가끔 미혼인 친구가 결혼하면(or 애있으면) 좋냐고 묻는다. 그럼 결혼1n년차, 귀여운 아이가 하나있는 40대 주부인 나는, 안좋다고 대답한다.
결혼제도는 망했어,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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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이 아내가 임신한 아이의 부계 유전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고 생각한다. 혼인제도를 통해 여자의 성관계를 독점하고, 대신 임신, 출산, 육아 기간 동안 아이와 엄마의 사회, 경제적 안전을 담보하는 계약관계. 태어날 아이가 남자의 아이인게 확보되기 때문에 생긴 제도인 것이다.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을 해오면 안되니까 '처녀성', '순결'을 사회적으로 강조하고 결혼 후에는 불륜의 금기를 아내에게 더 강하게 부여한다.
순수하게 내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모쒀족은 모계사회인데, 결혼제도가 없다. 성관계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여자아이는 2층에 방을 만들어주고, 낮에 정표를 주고받은 남자가 그 방에 들어갈 수 있다. 둘이 연인관계인 동안 남자는 계속 그 방을 드나들 수 있지만 그 집에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남자가 마음이 떠나면 그 방에 가지 않고, 여자가 마음이 떠나면 문앞에 짐을 놓아둔다. 그리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여자의 집안의 구성원이 되어 살아간다. 여자가 임신해서 낳은 아이는 여자의 아이다, 따로 증명이 필요없다.
남녀사이의 결합을 제도적으로 강하게 묶을 필요가 있다면, 그 사이에 양육이 필요한 아이가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태어날 아이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계사회에서 아이가 집안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별다른 증거가 필요없다. 때문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별다른 제도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부계사회에서 '부계'는 -당시 시대상- 태어난 그대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가정의 경제는 부계에 묶여있으니, 후대가 태어나기 전 후대의 유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들을 통제하겠다는 선언이 결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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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한국에서 부계의 증명은 과학으로 가능하다. '친자확인'을 통해서 혼외자녀의 경우에도 인지가 가능하고 친자가 아닐 경우 혼인 기간 내 출생한 자녀여도 친생부인을 할 수 있다. 아이가 생기기 전후로 조건들을 통제하지 않아도 부계를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부계의 보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자에게 벌이가 불가능한 세상이 아니다. 게다가 남자 혼자 벌어 가정의 부양이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맞벌이로 내몰린다. 경력단절로 쉽게 돈을 벌지 못하거나 아이 보육의 문제로 큰 벌이를 하지 못하면 남편은 '퐁퐁남'이 되어 '여자가 놀기 위해' 남자가 번 것을 쓴다고 후려친다. 결혼은 더이상 여성의 사회, 경제적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돌보면서 맞벌이도 하고 집안일도 하는 삼중고를 겪는다. 결혼의 보상성은 커녕 결혼은 오히려 여성의 사회, 경제적 안전망을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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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관습적 강요는 여전하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영상, 임신-가 나오면 해당 여성은 도덕적으로 지탄 받는 정도를 넘어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흔히 말하는 '몰카'는 찍힌 여성이 피해자여도, 보호는 커녕 비난의 대상이 되고, 해당 피해자는 극단으로 내몰린다.
이 와중에 정부는 전국의 가임기 여성인구를 보여주는 가임기 여성지도를 만들어 배포한다. 지자체가 자신이 가진 '자궁'의 수를 무기로 다른 지자체와 무한 결투를 벌이라는 정부의 판짜기란다. '여성'은 부계를 잇기위한 한낱 자궁에 불과한데, 결혼 전에는 깨끗하고 건강한 자궁이어야 하고 결혼 후에는 순종적인 자궁이어야 한다. 지자체의 무기로서 자손을 무한 생성하는 공장이어야 한다.
출생에 있어 자궁이 무척 중요해진 것 같은 판국에 그 자궁을 가진 여성은 여전히 수단화되고 있다. 오히려 이전보다 복잡 다양한 방식으로 물화가 이루어진다. 여성은 오랜 시간 남성의 성욕을 외부화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남성향 웹툰과 애니메이션의 여성 캐릭터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남성 캐릭터와 자기를 욕망하는 '성욕의 화신'이었는데, 요즘은 더 나아가 인간성도 파괴된 채로 성욕만을 가진 캐릭터로 그려진다. ㅇㅎㄱㅇ 로 대표되는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캐릭터는 근래 초등학생의 얼굴을 하고 있다. 깨끗하고, 순종적인 캐릭터에 대한 부계의 욕망은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은 채로 기괴해질대로 기괴해졌다. 깨끗한 자궁에의 욕망은 아이의 얼굴과 아이의 몸을 한 여성캐릭터가 남성을 갈구하는 얼굴을 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에 이르렀다.
나이든 '예쁜' 여자와 결혼한 전문직 남성들을 퐁퐁남이라 부르며 늦게 결혼하는 여성이 비하되는 반면에, 남성의 성욕을 받아'주는' 성매매여성의 지위는 외려 끌어올려진다. 영화 <아노라>는 성매매여성인 애니가 자신의 이름인 아노라를 찾듯 자신을 찾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 이야기인데,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남성캐릭터인 이고르다. 성매매여성이 현실에서 위협을 당하는 것은 성매수하는 남성들에 의해서이고, 그들의 지위가 낮은 것도 남성중심사회에서 이루어진 것임에도, 영화는 내내 아노라를 위협하는 것은 여성으로, 아노라를 구원하고 도와주는 것은 남성으로 그린다. 그리고 끝내 그녀를 구원하는 것도 이고르가 그녀를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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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제도의 존재가치와 그 보상체계가 다 무너진 상황에서 결혼제도가 기반한 남성중심적인 사회는 더욱더 남성중심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출생율을 끌어올리는데는 출산을 하는 여성의 결정이 중요함에도 정부와 사회는 암묵적으로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 개인의 자아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출생율이 가져오는 위기를 부계사회 존속의 위기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난 그래서 생각한다.
결혼제도에서 여성을 놓아달라고
결혼에서 자궁을 놓아달라. 버지니아울프가 약 백년전에 말했던 자기만의 방은 이제 더 그 공간이 쪼그라들어서 자궁이 되었다. 그 작은 공간이라도 여성에게 돌려주길 바란다. 더이상 결혼제도의 보상을 믿지 않는, 오히려 결혼제도의 피해를 목격해온 수많은 자궁들을 그들 자신의 자아에게로 돌려줬으면 좋겠다. 사회의 자궁도 아니고, 지자체의 자궁은 더더욱 아니며, 가족의 자궁도 아니고 그저 나의 장기로.
여성의 자아가 자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20대의 나는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나는 대학생이고 취준생이었다. 30대의 나는 더 늦으면 장애아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 사람이었다. 지금 나는 더이상 생산이 불가능한 시기를 앞둔 여성이 아니다. 글을 쓰는 한 명의 작가다.
인구소멸을 막는 자궁, 부계의 후손을 담보하는 자궁, 젊은 자궁, 늙은 자궁, 그렇게 물화되고 작아진 수단으로서의 여성에게는 이미 -사회보다 이전에- 앞으로가 없다.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 여자 혼자서도 정자를 골라 임신을 준비할 수 있는 사회, 결혼도 아이도 선택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그렇게 여성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사회, 그런 사회가 앞으로도 살아남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2025.7.7
여자들이 늙은 자궁, 어린 자궁 취급받는 현실이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