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미시적인 세계의 블록버스터 -후편

영화 <썬더볼츠*> 리뷰

by 사유의 서랍

- 본 리뷰는 영화<썬더볼츠*>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osorap/59



마블의 대책없는 규모키우기에 따른 마블팬들의 열화와 같은 실망(?) 속에 <썬더볼츠*>는 놀랍게도 가장 작은 곳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바로 '심리'라는 미시세계에서다. <썬더볼츠*>는 같은 구도, 같은 장소에서 다른 행동, 다른 표정, 다른 대화를 함으로써 캐릭터의 심리가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썬더볼츠*>는 나아가 보이드가 구현하는 그림자공간을 통해 인간의 기억과 심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도 한다.


common.jfif <썬더볼츠*>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 (포스터출처: 네이버영화)


전편에서 썼던 같은 구도에서 다른 옐레나의 표정을 조명한 것은 옐레나 심리의 변화를 연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 초반, 옐레나는 우울증에 걸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보이드가 구현한 그림자공간에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알코올중독상태로 추측이 가능하다. 후반부 옐레나가 구하러 들어가는 밥은 조울증을 추측하게 하는데, 옐레나와 같은 공허함을 느끼는 데서 울증이, 센트리일때 지나치게 자만하는 모습을 보아 조증이 보인다. 초반부 우울증을 겪던 옐레나가 후반부에는 같은 공허함을 겪는 밥을 구하러 가는데에 별다른 고민이 없는 모습은, 옐레나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장면의 반복과 대비는 이외에도 있다. 쿠알라룸프루의 연구실에 들어갈 때 옐레나는 공허함에 빠져있다는 독백을 하고 연구소에 들어가는 싸움장면에선 -이후 보이드가 만드는 그림자처럼-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채 끝이 없어보이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보이드가 구현한 그림자 속 연구실에서 옐레나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와중에 '밝은 공간' 속 장애물을 뛰어넘어 밥에게 다가간다. 옐레나가 초반에 밥에게 '누구나 혼자'라고 말할 때는 주변도 옐레나의 얼굴도 어둡지만 후반부의 보이드 공간에서 그 말을 번복할 때는 옐레나의 얼굴에 밝은 빛이 비친다.


밥은 영화 속에서 빌런이자, 옐레나가 자신의 어둠을 통해 처음으로 구원한 동료가 되기도 하지만, 옐레나가 가진 어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옐레나는 초반에 저장소에서 밥에게 'stay behind me'(내 뒤에 있어)라고 말하고 밥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반부 옐레나는 자신의 어둠과 함께 나아가기로 결정한 것 같다. 옐레나는 보이드로 변해가는 그림자 공간 속 밥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결국 그가 보이드에서 나오게 한다. 옐레나가 밥을 저장소 깊은 곳에 두고 오지 않기로 결정한 것처럼, 자신의 어둠을 마음 속에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함께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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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대비를 통해 변화와 성장을 묘사하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이의 과정에 집중하게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옐레나는 우울증을 벗어 던지고 조울증에 걸린 밥을 구하러 갈 수 있나?


우울증을 겪던 옐레나가 후반부 결연한 표정을 짓게 되기까지 옐레나는 크게 세가지 과정을 경험한다. 첫째, 밥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한다. 둘째, 같이 다니게 된 사람들의 다양한 슬픔을 목격한다. 셋째, 알렉세이가 함께해주고 옐레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옐레나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생존을 위해 팀이 '되어버린' 썬더볼츠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날 줄도 모르고 착한 사람도 아니며, 자신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저버린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루저', '빌런'과 같이 취급할, 초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은 것뿐인데, 그 손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그 잡은 손들이 세를 넓혀 다른 사람들도 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그렇게 부족한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을 경험한다. 옐레나는 밥, 썬더볼츠, 아빠와 '함께 있음'을 경험하면서 공허함을 극복한다.


그렇게, 인간 내면의 심리에서 시작한 <썬더볼츠*>는 팀업무비로서의 개연성에도 도달한다. 옐레나가 공허함을 극복하는 것은 팀이 있어서이고, 부족한 팀원들은 함께 있음으로써 서로를 채운다. 그리고 밥을 구할 때도 옐레나를 시작으로 모두가 팀을 이뤄 그에게 '함께 있다'를 외치고, 그 말처럼 서로의 팔이 엮인 채로 그림자공간을 빠져나온다. 영화 초반 '자신'이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서로의 팔을 엮고 밥의 재채기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이를 외쳤던 팀은 이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구하러 뛰쳐나가 밥의 팔을 부여잡으며 '함께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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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리, 그 변화를 다루는 것은 나로부터 한없이 멀리있는 블록버스터를 내 삶의 경험으로 끌어오는 효과를 가진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어릴 때 납치되어 어린이 청부살인자로 세뇌되어 키워진 경험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슈퍼솔져 혈청을 맞았지만 몰락한 군인은 어떤가. 한번도 '착하게' 살아본 적이 없고 영화 시작부터 사람을 죽인 고스트 능력자는 어떻고...? 하지만 그 내용이 자신의 잘못을 돌이킬 수 없어서 오는 우울증으로 일반화될 때, 사람들은 공감을 통해 영화의 장면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킬 수 있다. 자신의 처지에 괴로워하느라 소중한 사람을 놓친 경험, 실수한 게 떠올라서 밤마다 하이킥으로 코어능력을 키운 경험, 삶에 너무 익숙해져서 해야할 것, 나아가야할 것에 안이해진 경험들은 그 경중은 달라도 하나쯤은 관객의 삶에 존재하는 경험들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이 내 일상의 경험으로 치환될 때, 영화는 그 본연이 가진 기반보다 더 넓은 철학적 기반을 가지게 된다. 공감을 통해 영화적 체험을 자신의 체험과 연결함으로써, 100여분의 짧은 영화시간에 담지 못한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극에 관객은 자신의 체험을 채워넣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와 관객 간의 일종의 소통이다. 그리하여 나의 일상은 블록버스터가 되고 블록버스터는 나의 체험이 된다. 나아가 관객은 영화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 치유받고 블록버스터는 빈 공간을 채워 개연성을 높인다. 윈윈이다.


<썬더볼츠*>에서 인간의 심리묘사에 캐릭터와 서사, 팀업의 중심을 둔 것은 마블이 시작했고, 그러나 한동안 놓쳐왔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썬더볼츠*>가 보이드를 시각화함으로써 우울증과 그 치유과정을 담고, 밥과 옐레나의 그림자공간 속 영상을 통해 그들의 경험을 일상생활의 경험 수준으로 만들어 공감의 진입장벽을 낮춘다. 그리고 썬더볼츠들이 그림자공간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 팀을 이루는 개연성까지 제공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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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리즈물에선가 잠깐씩은 빌런으로 등장했던 버키, 옐레나, 에이바, 존과 이번 영화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밥까지, <썬더볼츠*>의 히어로들은 도덕적 결함이 있고 심지어 개인의 초능력이 없거나 있어도 대단치 않은 이상한 히어로들(+히로인들)이다. 그들이 히어로가 되고 팀까지 이루는데에 고작 두시간여의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제이크슈레이어 감독은 심리를 기반으로 캐릭터와 캐릭터 간 서사, 팀업 서사를 설정함으로써 간만에 나름 성공적인 MCU 팀업무비를 만들어냈다. [우울증 걸린 리더가 조울증 걸린 빌런을 맞서 싸우다 결국 조울증 걸린 빌런의 마음 속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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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아

를 발견하고 안아줌으로써 빌런을 퇴치하는 영화]라고 하면 매우 이상해지지만 <썬더볼츠*>는 그런 영화가 맞다. 정신병원에 가야할 사람들이 안가서 그들에게 피해본 사람들만 정신병원에 많다, 는 말도 있지 않나. 그들의 마음이 아픈 것은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안티 히어로같은 그들의 트라우마가 오히려 그들이 히어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영어벤져스 팀업무비가 있고, 이후에 보다큰 팀업무비인 어벤져스 시리즈가 온다고 한다. 어벤져스 캐스팅에 당당히 루이스풀먼도 그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아 밥은 썬더볼츠*(*뉴어벤져스)의 팀원으로 당당히 입성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우리 썬더볼츠 애들은 너무 능력이 없어요 외계인 우울증테라피 할 거 아니잖아요) 밥까지 포함된 뉴어벤과 브뉴월에서 공인된 새 캡아 샘이 이끄는 영어벤이 어떻게 차이나고 영어벤이 어떤 서사를 가지고 뉴어벤과 갈등을 겪고 어떻게 새 어벤져스로 조우할지 앞으로 풀려나올 것이다. 밥이 입성해서 제대로 팀으로 활동하는, 썬더볼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솔로무비가 하나쯤 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래서 영어벤 다음에 바로 어벤져스가 예정된 지금의 페이즈 플랜에 아무런 기대가 되지 않지만- <썬더볼츠*>는 적어도 아직 MCU를 포기할 때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2025.05.19

옐레나는 밥만 안아주지 말고 나도 안아



- 로버트가 왜 자신을 밥이라고 소개했는지 영화 안에서는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루이스풀먼이 '밥'이라고 소개하니까 탑건 최근편도 생각나고 나는 다른 밥이 나오는 미니언즈도 떠올랐다. 슈퍼배드의 조연(?)이었던 미니언즈가 히트를 치고 미니언즈 솔로(?)무비도 따로 나오는 게 MCU에서의 <썬더볼츠*>와도 비슷한 위치같다. MCU에서는 <썬더볼츠*>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을 것 같은데 사실 근래 나온 MCU 영화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축에 들어가는 게... 이후 시리즈에도 영향을 줄까?


- 결함이 있는 캐릭터들이 얼렁뚱땅 좌충우돌하며 팀을 이루어가며 어쨌든 다음 세대를 준비해나가는데 그들에게 가져온 알렉세이의 (저작권을 피하는) 팀의 새 이름이 avenger "Z" 인 게 재밌다. 지금 세대가 좌충우돌하는 genZ에게 보내는 찬사인거 같아서.


- 이로써 <썬더볼츠*> 리뷰는 끝입니다. 담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전후 2편으로 나눴는데 그래도 아직 못 담은 말들이 있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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