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챌린저스> 리뷰 3. 음악
* 본 리뷰는 영화<챌린저스>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 상편 https://brunch.co.kr/@sosorap/58 에서 이어집니다.
Caetano Veloso - Pecado(죄)
https://youtu.be/e5D6NNY7YDg?si=I9eju8Nk_4R_rm3v
아트와 타시의 관계가 끝나감을 의미하는 대화에 이어지는 슬픈 느낌의 발라드, 곡이 끝나며 이어지는 타시의 외도 때문에 가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곡은 아트와 타시의 이별을 의미하는 곡으로 여겨졌다. 재밌는 건 이 곡이 스페인어고, 타시의 슬픈 표정에 이어지는 호텔 바깥의 폭풍, 이어지는 타시와 패트릭의 대화내용 때문에 챌린저스의 스페인 팬분들 몇은 그 누구보다 타시의 마음을 잘 알게 되는 반면, 그 외 언어권에서는 타시를 오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곡은 전곡이 다 나오고 타시의 표정이 여러 번 클로즈업된다는 점, 둘의 내면이 드러나는 침실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어느 곡보다 타시의 심리를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중요한 곡이다. 즉, 이 곡의 제목 'Pecado'의 뜻인 '죄' 혹은 (종교적) '죄악'은 타시의 내면의 죄 혹은 죄악감을 의미한다.
타시는 어떤 죄를 지었나? 그리고 타시는 왜 그런 죄를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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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으로 돌아가보자. 바쁘게 돌아가는 테니스선수의 아침 루틴(가벼운 운동과 마사지, 식단)을 배경으로, 아트가 출전하는 이번 경기의 의미, 배경, 준비과정, 전력분석이 이어지는 뉴스가 켜져 있다. 타시는 뉴스를 들으며 광고 문구를 수정하기도 하고 뉴스의 내용을 들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 장면은 아트와 타시의 관계(부부이자 코치와 선수)와 그외 영화의 설정,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는 과거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장면이자 영화에서 전개될 장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려주는 장면이다. 아트는 슬럼프를 겪고 있고, 슬럼프는 무언가가 그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타시는 코치로서 슬럼프를 넘어갈 방법을 고민한다.
뉴스에서 타시가 아트의 스텝을 전부 교체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호텔, 이어지는 경기 전 장면을 보면 아트 주변의 스텝이 전부 남자인 것을 알 수 있다.
경기 전 두 선수가 마주 했을 때 아트는 상대선수를 유심히 보는데,
아트의 행동을 보고 상대선수를 돌아보는 타시. 타시가 눈여겨 보는 이유는 영화 중후반 그 이유가 나오는데,
둘의 약혼시절, 애틀랜타에서 패트릭이 등장한 후 아트의 히팅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위에서 입장하는 경기가 8년 후 애틀랜타 오픈이다).
앞서 [입이 표현하는 욕망] 편에서 보았듯이, 아트는 바이섹슈얼이고, 결혼생활동안 타시는 아트의 동성애지향을 통제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껌을 뱉게 하고, 그걸 받아드는 행위는 컨트롤프릭과 그에 순응하는 행위 - 서열에서 나타나는 행위 그 자체다. 특정 욕망의 허위충족, 그리고 제거.
타시는 애틀랜타에서 아트가 바이섹슈얼임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혹은, 패트릭을 향한 감정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의 애정관계가 테니스실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때 알았을 수도 있다.
때문에 8년 후, 아트가 슬럼프를 겪자 타시는 그 원인을 애정관계에서 파악한다. (타시는 테니스가 relationship이라고 언급하고 이 대사는 영화전체적인 메타포다). 타시가 아트에게 가서 코치가 되고 결혼에 이르자 아트는 테니스대회에서 우승하기 시작했다. 8년 후 아이도 잘 커가고 있고 타시와 아트의 관계에서 큰 변화가 없는데도 아트가 슬럼프를 겪는 이유를 타시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충족되지 않는 아트의 욕망-동성애지향-으로 본 것이다.
8년의 결혼생활동안 타시와 아트는 패트릭-아트와 유사하게 통제-순응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패트릭이 아트를 통제하는 대신 그를 보호하고 남성사회에서 지배적 지위를 함께 향유하게 했다면, 타시는 아트를 통제하는 대신 아트는 타시의 애정관계를 독점하는 교환관계였다. 타시가 패트릭과 달랐던 것은, 둘의 관계가 끝을 보일 무렵 아트를 통제해왔던 그동안의 패턴을 바꿨다는 데 있다. 그녀는 아트의 스탭들을 동성으로 바꾸고, 그래도 변화가 없자 패트릭을 만나도록 아트를 지역대회로 이끈다. 타시는 그의 동성애지향을 인정한다. 12년 전 패트릭이 아트와의 관계를 처절하게 부숴버리고 나와 타시와의 관계를 만들었던 8년 차에, 타시는 아트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패트릭을 그 관계에 초대한다.
타시의 의도를 단순히 보아 타시가 지배적인 지위를 놓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패트릭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타시의 욕망은 스스로 서열의 꼭대기에 올라갔던 12년 전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데, 이제 아트없이는 (부상당한 다리로) 서열의 꼭대기에 올라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텔의 꼭대기방을 좋아하는 딸의 기호, 가족을 중시하는 타시의 성향을 보아서도 아이의 아빠인 아트와 헤어지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서열을 중시해서 아트와 헤어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더이상 테니스를 치지 않는 아트와 함께할 이유도 없어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타시는 아트가 '내일 지면 떠날거냐'는 질문에 '떠날거야'라고 말하고 이내 '이게 너에게 도움이 되냐'고 되묻는다. 타시는 테니스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는, 그래서 더이상 테니스를 치지 않는 아트와의 관계에서 이전에 유지했던 '교환계약'이 더이상 성립하지 못함을 안다. 하지만 그래서 떠날 거냐면 '떠난다'는 대답은 아트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위해서 내뱉는 말일 뿐이다. 둘이 오랜 시간 유지해왔던 관계의 양상에 끝이 보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타시는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 그것은 타시가 아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태 저자세로 있던 아트가 고개를 드는 시점에 흘러나오는 노래가사는
Sólo sé que es amor
단지 이게 사랑인 건 알아
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둘의 관계 속에서 타시가 무엇을 해야할지도 무엇을 하고싶은지도 알 수 없지만 타시는 아트를 사랑하는 것만은 안다.
Sólo sé que me aturde la vida Como un torbellino 단지 내 삶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속절없이.
Que me arrastra, me arrastra A tus brazos en ciega pasión 나를 휩쓸고 가, 눈먼 열정으로 너의 품 안에 휩쓸고 가
타시는 이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다. 그 시작이 '교환'이었는지,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의 충족이었는지, 아니면 아이(릴리)로 이어진 가족간의 정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타시의 현재 마음은 단순히 아트를 향한 '사랑'이다.
그래서 타시는 자신의 무릎 상처에 키스하는, 여전히 13년전처럼 불안해 하는 아트를 보며 슬퍼한다.
그가 자신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에.
2025. 7.21
2024.06.28의 리뷰를 가지고 와서 세 편으로 나누고 중간 편을 새로 썼습니다.
* 여기서 시작된 오해는 타시의 캐릭터에 대한 오해, 나아가 영화 전체에 대한 오해로 이어진다. 타시가 스스로 금기로 설정한 죄를 짓기로 결정한 것(패트릭과 자는 대신 패트릭에게 져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타시가 아트를 사랑(혹은 욕망)하는 법이라는 걸 모르니 타시가 아트를 사랑했다는 부분도 알 수 없어진다. 타시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타시 캐릭터가 아트와 패트릭 사이를 오가는 연결고리, 혹은 방해물로 격하되고, 이 영화는 아트와 패트릭 둘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퀴어무비가 된다(퀴어무비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타시의 결심이 드러나야 타시의 아트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고, 아트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야 이 영화는 명확히 아트-타시-패트릭의 각 관계를 모두 조명하는 '온전한 삼각'을 바라보는 영화가 된다.
- 하편에 이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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