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산 May 04. 2024

나의 와이파이존

혼자 하는 여행과 함께 가는 여행은 확연히 다르다. 함께 가면 동행의 존재에 안심이 되니 긴장감이 떨어진다. 혼자 가면 바짝 긴장도가 오르지만 그만큼 더 용감해지고. 나는 내향형이나, 혼자일 때는 외향성이 짙어진다. 그건 내 휴대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데이터가 없는 휴대폰.      


데이터를 쓰기 위한 유심칩을 사 본 적이 없다.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은 오직 숙소에서뿐이다. 밖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릴 수 없다. 대형 지도 한 장을 쫙 펼쳐 주거나, 인덱스를 빼곡하게 붙여 놓은 여행 책에 코를 박고 있노라면 친절한 현지인이 먼저 다가와 주기도 했다.         


현지인과의 대화는 외국 여행에서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지금 여기가 어디예요? 내가 맞게 가고 있나요? 이리로 쭉 가면 나오나요? 근처에 맛있는 식당 있어요? 몇 번 버스를 타면 돼요?’ 길에 사람이 전혀 없을 때도 가끔 있었다. 그럴 땐 어쩔 수가 없다, 눈에 띄는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누군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또 누군가는 전화를 걸어 주었다.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데이터를 사용할 계획은 없다. 데이터 없는 휴대폰은 내게 극히 조금 존재하는 외향성을 끄집어내 크게 부풀려준다. 나의 빈 데이터를 대신해 줄 와이파이 신호 - 사람들은 내 주변 어디에나 있다. 꽉 찬 네 개짜리 신호도 좋지만 어쩌다 한 개뿐이면 어떠랴. 그들을 향해 내가 직접 찾아가면 될 것을. 

이전 02화 수전증이 아니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