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여행과 함께 가는 여행은 확연히 다르다. 함께 가면 동행의 존재에 안심이 되니 긴장감이 떨어진다. 혼자 가면 바짝 긴장도가 오르지만 그만큼 더 용감해지고. 나는 내향형이나, 혼자일 때는 외향성이 짙어진다. 그건 내 휴대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데이터가 없는 휴대폰.
데이터를 쓰기 위한 유심칩을 사 본 적이 없다.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은 오직 숙소에서뿐이다. 밖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릴 수 없다. 대형 지도 한 장을 쫙 펼쳐 주거나, 인덱스를 빼곡하게 붙여 놓은 여행 책에 코를 박고 있노라면 친절한 현지인이 먼저 다가와 주기도 했다.
현지인과의 대화는 외국 여행에서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지금 여기가 어디예요? 내가 맞게 가고 있나요? 이리로 쭉 가면 나오나요? 근처에 맛있는 식당 있어요? 몇 번 버스를 타면 돼요?’ 길에 사람이 전혀 없을 때도 가끔 있었다. 그럴 땐 어쩔 수가 없다, 눈에 띄는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누군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또 누군가는 전화를 걸어 주었다.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데이터를 사용할 계획은 없다. 데이터 없는 휴대폰은 내게 극히 조금 존재하는 외향성을 끄집어내 크게 부풀려준다. 나의 빈 데이터를 대신해 줄 와이파이 신호 - 사람들은 내 주변 어디에나 있다. 꽉 찬 네 개짜리 신호도 좋지만 어쩌다 한 개뿐이면 어떠랴. 그들을 향해 내가 직접 찾아가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