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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 Oct 11. 2023

아들 울어? 야나두

이혼 후 택배를 합니다 04

아들 울어? 야나두


똥돼지 소개를 야금야금 했지만 새벽 택배일을 하며 나를 사로잡은 고민거리는 역시 초등 저학년 아들이었다. 외동으로 자라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또래보다 서투른 면이 많은 아들은 저릿한 손가락이었고, 엄마 없는 새벽에 잘 자주겠지 하는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솔직 하자면, 전화가 올 것을 직감했고 슬픈 예상은 언제나 한국 양궁만큼 적중이다. 아니 근데 이렇게나 5G로 적중할 필요는 없잖아.


첫날 바로 걸려온 전화.


“으아앙~~ 엄마 어디야아~~~”


H는 몹시 곤란한 표정이었고 나는 우리 모자와 나를 구인해 준 00 물류의 미래를 위해 차분히 통화를 마치고 가뿐하다는 로봇미소를 날렸다. 친애하는 아들아. 앞으로 딱 두 시간 반만 숙면해 주면 안 되겠니? 예민한 쫄보 어린이에게는 기가 차고 코가 차는 언감생심 물음이겠지만.


그렇다면 남은 건 개와 교섭의 시간뿐. 당시 S는 휴대폰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제 재미난 걸 알 시기가 되니 마인 크래프트니 로블록스니 하는 게임을 즐기기 시작한 것. 어릴 때도 미디어 노출을 자연스럽게 했던 성긴 육아였는데 아들이 짠한 아빠는 원하는 모든 게임을 깔아줘 버렸다. 아빠의 존재가 베프였으면 해서 안 본 눈 했지만, 휴대폰이 뿜는 도파민에 빠르게 물들어가는 S가 걱정돼 폰 사용을 자제시키는 와중이었다.


나는 피의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내게 돈이란 지긋지긋한 보스몹 같은 악몽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기회비용의 법칙은 없는 자에게 더 잔인하게 적용되는 법. 양질의 보육과 올바른 수면을 위해 어렵게 구한 새벽알바를 포기할 것인가? (yes/no) 과감히 예스 버튼을 못 누르는 스스로가 넌덜머리 나도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독해져야 했다. 이 선택이 두 사람을 위한 길이라 믿고 눈 찔끔 감고 어금니 꽉 깨물고 풀악셀이다.


‘새벽 알바 하게 됐는데 S 휴대폰 잠금기능 일하는 시간에 좀 풀어줘.’


아이 아빠에게 카톡을 보내며 백 가지 상념이 들었고 그거 꼭 해야 하냔 불퉁한 잔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상전을 열심히 구슬렸다. 이왕이면 새벽에 쭉 주무시면 되는 데 혹시나 기침하게 되면 잠금을 풀어 둘 테니 휴대폰을 해도 좋다, 식탁에 맛있는 주전부리를 둘 테니 얼마든지 잡숴도 된다, 따위의 회유를 하며 이 생각을 반복적으로 했다.


먼지다듬이벌레 같은 때려죽일 놈의 머니!


거래가 성사되기 전, 초반 며칠은 둘 다 눈물 바람이었다.


엄마 대체 왜 없어 잉잉.

나도 왜 네 옆이 아니라 00 아파트인지 모르겠다 잉잉.


그거 하지 마! 나 울고 있잖아 징징.

안 했으면 좋겠다고? 야나두 징징.


대충 이런 워딩을 했지만 사실 억장 내려앉는 가슴 아픈 기억. 눌러둔 눈물샘에 자유를 허하고 암담의 우물에 고개 처박고 바닥을 찍었다. 이렇게 이 아이를 울려가며 해야 하는가와 곧 적응될 거고 해내야 한다는 양가감정 속에서 방황하다 맘을 다잡았다.


‘독해지자.’


안타까울수록 더 힘차게 발바닥을 굴렀고 매일 차곡차곡 만보이상을 찍었다. 못난 엄마 만나 고생하는데 이른 기상에 엄살떨지 말자 스스로를 타일렀고, 중량 치는 택배에 어깨가 빠질 것 같아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똥땡이도 눈물을 닦고 주말이면 엄마 알바 안 가? 반문하게 되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잠깐, 기쁜 게 맞나? 찬란한 슬픔정도로 갈무리하자.


하루 평균 배송해야 하는 택배 약 150개. 주어진 시간2시간 30분 이내. 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소문대로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새벽 세시반 칼기상. 회사는 불시의 상황에 반차 연차를 쓰지만 택배는 부루마블 황금열쇠도 무쓸모다. 특히 쿠팡 cs팀의 업무독촉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7시 전에 택배선생님들을 고객님 대문에 모실 수 있는 가’의 명제는 오직 거짓 없는 참으로 부지런한 대한민국에 던져졌다.


바쁜 현대 사회 밈에 사무치게 공감하여 아예 그걸로 타투를 해버릴까 생각하는 쿠팡맨 그리고 쿠팡우먼.


혹시, 야 너도?

야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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