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워니 이야기
나는, 사람을 사귀는 데 무서움이 없으며, 크고 작은 단체(?)의 감투를 너무나 쉽게 쓰며, 술자리에선 그 누구보다 목소리가 크고, 노래방 테이블을 댄스 스테이지로 만드는! 자칭, 타칭 O형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용실에만 가면 부끄럼쟁이가 된다.
‘중년 아줌마 얼굴이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우기던 마음도 큰 거울 속 올빽이가 되어버린 모습에 고개가 숙여지고, “괜찮으세요?” 한마디에 염색약으로 불타는 나의 두피는 멀쩡한 상태로 소환된다.
제일 문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 헤어스타일도 마음에 든다며 웃는 얼굴로 쿨하게 퇴장한다는 것이다. 미스코리아라도 된 마냥, 웃음에 서글픔을 숨기고.
오늘도 여지없이 미용실의 소심쟁이가 된 나는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펌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 손님! 외모는 옆집 총각 같은데 말하는 품새가 범상치 않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디자이너와 찬찬히 이야기를 한다. “구레나룻은 귀 옆에서 사선으로 정리해 주시고요. 정수리 쪽은 띄울 수 있게… 어쩌고 저쩌고.” 짧은 남자 머리 치고는 장황한 요구가 이어진다. 나는 그저 그가 부럽다. 자신의 모습에 관심과 사랑이 많으니 요구사항도 구체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커트가 끝나자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며 다시 수정을 받았고 개운한 얼굴로 미용실을 나갔다.
여러 생각이 든다. 그의 자신감과 생각을 가감 없이 전하는 담백한 자세. 나에겐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난 사실 부탁 할 일이 생기면 전날부터 잠을 못 자는 아주 작은 마음을 가졌으니까. 왜 나는 그처럼 하지 못 하고, 미용실의 소심쟁이인 걸까? 내 돈 주고 받는 서비스에 왜!! 제대로 말을 못 하는 거니!
언제부터인가 타인에게 부담 주는 말은 잘 못하게 됐다. 모두에게 좋은 시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는 감정이 마음속 깊이 깔려있어 응당 해야 할 이야기도 잘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감정, 생각이 좋기만 한 걸까? 내가 아닌 타인들이 내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자꾸 의심이 든다. 내가 모르는 내 안 어딘가에서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편했던 작은 기억들이 차츰차츰 커지는 것 같다.
다음번 미용실에 올 때는 꼭 내 마음에 드는 머리를 하리라! 내 요구사항은 백 번이라도 연습해 꼭 전달할 것이다! 나는 이미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이며 타인에게까지 잘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의 의견, 생각은 물론 사랑스럽게 잘 받아들여질 거다. 충분히!!!
깊은 밤 혼자만의 마음가짐 연습은 끝날 줄 몰랐다. 제발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이루어지길.. 옆집 강아지 털처럼 상해버린 내 긴 머리는 다음번에는 꼭 사랑받으리라, 나한테 일 순위로!
- 원더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