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돌에는 이끼가 낀다.
※ 소소의 배우자(일명 곰)가 쓴 글로, 소소와 비슷한 듯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은 글입니다.
장모님은 화초를 좋아하신다. 좋아하실 뿐만 아니라 잘 돌보셔서 처가에 가면 항상 화초들이 신기하게 잘 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모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화분을 나눠주시길 좋아하시는데, 좀 넓은 집으로 이사 온 초기에는 주시는 화분을 다 받아왔다. 화분은 알아서 쑥쑥 크는 줄만 알았다. 지금은 그 많던 화분 가운데 큰 화분 3개만 살아남았다.
장모님은 잘만 키우시는데 우리 집에 온 화분은 왜 다 죽어 나갈까를 소소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추측은 ‘아마 잎을 닦아주지도 않고 물로 씻어주지도 않아서 아닐까?’였다. 나도 별 고민 없이 한 말이었고, 소소도 당시에는 별 반응 없이 넘어갔다. 얼마 전 외출을 준비하다가 몇 분가량 시간이 뜬 일이 있었다. 그때 소소는 갑자기 거실에 있는 화분의 잎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수건에 새까맣게 먼지가 묻어나왔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진짜 숨이 막혀 죽었을 수 있겠다.’
나는 창문을 여는 환기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봄에는 꽃가루와 황사 때문에, 여름에는 냉방 효율 핑계로 창문을 잘 열지 않는다. 그나마 가을 한 때나 창문을 좀 열곤 한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전열교환기라는 이름의 환기장치가 다들 달려있다. 그래서 보통 환기가 필요할 때 환기를 켠다. 전열교환기에는 필터가 달려있다. 그래서 어지간한 먼지는 다 걸러진 깨끗한 공기만 집안으로 들인다. 그래서 그런지 밖에서 바람이 세게 부는지, 비가 오는지, 무슨 냄새가 나는지 잘 모르고 살게 된다.
집이 나름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잎에서 나온 까만 먼지를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먼지들은 어디서 와서 어느새 저렇게 쌓여있을까? 겉보기에 파란 잎은 그저 싱싱해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먼지들은 잎의 앞도 모자라 어느새 줄기와 뒷면까지 달라붙어 숨 못 쉬게 하지 않을까?
작년은 몸 상태가 유난히 힘든 한 해였다. 재작년 11월에 유행이 다 지나간 코로나에 걸려 마음먹고 간 해외여행을 끙끙 앓아가며 보내고 난 뒤, 컨디션은 회복될 줄 몰랐다. 직장에서의 불만이나 앞일에 대한 불안도 영향을 줬겠지만, 이석증이라는 병도 앓아봤다. 술을 진탕 마시거나 롤러코스터를 탄 것도 아닌데 앉아 있거나 누워있어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도저히 출근이 불가능해 평생 처음 병가라는 걸 써보기도 했다. 짧은 병가를 마치곤 정확히 연원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날 짓눌렀다. 그리곤 얼마 안 돼 가끔 난 숨 쉬는 것도 버거워졌다.
경기도민 1년 차였던 나는 광역버스를 타고 매일 출퇴근을 했다. 어느 날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던 나는 갑자기 불안감이 치밀어오르는 걸 느꼈다. 갑자기 매일 타던 출근 버스가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고, 점차 숨 쉬는 게 힘들어 졌다. 당장 내리고 휴가를 써야 하나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처음 그 증상을 느꼈을 때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증상이 잦아져서 결국 대중교통을 포기하고 자차로 출퇴근했다. 차를 타니 조금 증상이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극심한 불안감과 호흡곤란은 점차 나를 자주 찾아왔다. 꽉 막힌 올림픽대로 한가운데서 그게 찾아올 때면 창문을 내리고 숨을 몰아쉬면서 제발 사고가 나지 않길 바란채 핸들을 꽉 쥐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 밤중에 갑자기 찾아오기도 했다. 잠을 자다가 그놈이 찾아오면 까닭 없이 조이는 심장과 답답한 가슴으로 소소가 깰까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서성거렸다. 그놈은 대중없이 오기도 했지만, 극장이나 영화관 객석 같은 좁고 통제된 상황에 부닥칠 때면 더 많이 찾아오는 거 같았다. 요즘 휴식을 취하며 좀 나아진 거 같아 따로 병원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공황을 겪은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왜 갑자기 숨쉬기 힘들어졌을까. 사람에게도 관성이 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관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나는 초중고 12년을 홍역에 걸렸을 때를 제외하고 결석해 본 적이 없다.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공강 시간에 짜장면에 백주를 먹으러 다녔을지언정 결석한 적이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때 성실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하던 일을 잘 유지하는 사람에 가깝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다니는 걸 잘 유지했고, 직장을 다닐 때는 직장 다니는 걸 잘 유지했다. 일상을 잘 유지한다는 것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겠다. 하지만 유지한다는 것은 변화가 없다는 말이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움직임이 없다는 말이다. 집 안의 화분처럼.
여러 가지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 내 30대를 다 보낸 회사인데, 막상 회사를 나오려고 보니 나오면서 들고나올 만한 성과가 없었다. 일상을 잘 유지하던 나는 어느새 까만 먼지를 뒤집어썼다. 나도 모르는 새 두텁게 쌓여 숨쉬기에 곤란해질 만큼.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이제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 걸 느끼고 움직여야 할 때라는 걸 느낀 순간 새삼스럽게 나를 덮고 있던 먼지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편안한 일상에서 나는 이렇게나 녹슬었구나.
주말에는 화분의 잎과 줄기를 닦아줘야겠다. 그동안은 알지 못 했지만, 까맣게 묻어나오던 먼지를 한 번 보고 나니 화분들이 답답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내 일상의 범위를 좀 넓혀야겠다. 비와 바람 맞는 걸 피하기만 해서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