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불혹에 강 멍 때리기

by 소소 쌤

※ 소소의 배우자(일명 곰)가 쓴 글로, 소소와 비슷한 듯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은 글입니다.


지난 며칠 새 내린 비로 댐이 방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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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수문들 사이로 물이 밀려 나온다. 주저하고, 머뭇대다가 이내 굽이치고, 휘돌고, 부딪히며, 뒤엉킨다. 검녹색 물 위로 흰 포말을 일으키며 콰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온다. 댐의 뒤, 강 상류는 며칠간 내린 비로 수위가 꽤 오른 모양이다. 그리고 강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댐의 수문은 열렸고, 강물은 준비 없이 하류로 떠밀렸다. 그래서 서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온갖 소리를 만들어낸다.

띵동댕~ 하는 소리가 급류의 비명을 뚫고 울려 퍼진다.

“지난밤 호우로 강 상류의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강 주위에 계신 분들은 즉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방류 중인 댐에서 연신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댐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아 흘러가는 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동안 나는 물은 흘러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물들은 여지없이 떠밀려 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개인적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자리를 하고 나면 에너지를 다 쓰고 녹초가 된다. MBTI로 분류해 보면, 전형적인 I형 인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좋다고 몰려가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두는 곳에서 시장이 만들어지고, 기회와 돈이 흐른다는 거다. 그렇다. 나는 주류를 좋아하지 않고, 시류를 보는 눈이 없는 편이다.


작년 말에 한참 정체 모를 불안감 때문에 고생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휴식기를 가졌다. 퇴사 전에 생각했던 거창한 계획들은 모두 물거품처럼 없어졌다. 출퇴근할 때는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회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퇴사하고 상상도 못 했던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지만, 결국 나는 다시 회사에 취업해서 출퇴근하는 생활로 돌아갈 때까지 계획했던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다. 좋지 않았던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회복했다고 최소한의 변명을 해보지만 사실 그건 내가 잘 안다. 변명은 변명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황에 떠밀린다. 준비되지 않은 채 어떤 상황을 맞이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사실 사람은 누구나 상황에 떠밀리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똑똑한 사람들은 이를 ‘피투성(被投性)’이라고 이름 붙였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런 준비 없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내던져진다. 그리고 대부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을 뜬다. 수문이 열리자 쏟아져 나온 물과 같이 그렇게 떠밀린 세상 속에서 서로 엉키며 비명을 지른다.


전 직장은 지금보다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두 시간 넘게 출퇴근하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사람 스트레스가 심했다. 복잡한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는 사람, 만원 지하철에서 큰 백팩으로 여기저기 치고 다니는 사람, 조용한 버스에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하거나 스피커로 영상을 보는 사람 등 일주일에 두세 번은 불쾌한 경험을 하곤 했다. 그게 싫어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깜빡이 없이 위험하게 끼어드는 사람, 진출입로에 길게 선 줄을 못 본 체하고 가다가 저 앞에서 끼어드는 사람, 복잡한 강남 한복판에서 두 차선을 물고 가는 사람 등 어쩌면 빈도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잠깐 보고 안 볼 수 있으니, 자차가 더 편했나 보다. 그때는 작은 스트레스가 심하게 다가왔다. 울컥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휴식기를 찹쌀떡처럼 늘어져 보내고 다시 2시간 여정의 출근길로 복귀했다. 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새로 다니기 시작한 회사의 규모도 훨씬 작아졌다. 하지만 나는 나이를 더 먹었다. 약 두 달가량 새 회사를 대중교통으로 다니고 있다. 새 회사는 주차를 지원해 주지 않는다. 선택지 없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마주쳐도 전보다는 불편함이 덜하다. 그냥 저런 사람이 있구나,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별 감흥 없이 넘어가는 일이 대다수다. 내가 나이를 더 먹은 덕인지 아무것도 이룬 것 없다고 생각한 휴식기가 도움이 된 덕인지 모르겠다.


문득 방류하는 수문을 보며 피투 된 인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 눈에 비친 다른 사람들도 준비 없이 내던져진 사람들이다. 수문 앞의 급류처럼 의도하지 않은 채 엉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같이 엉킨 채 비명을 질러대기 급급했던 거 같다.


피투성을 말했던 똑똑한 사람들은 기투(企投)에서 의미를 찾았다. 사람은 피투 된 존재지만 기투하며 살아가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무얼 던져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대로 던지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물며 사람과 엉킨 아수라장에서 정신없이 무얼 던져봤자 그건 내가 던지는 게 아니다. 그저 던짐을 하도록 상황에 떠밀리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기투하는 것은 능동적으로 살겠다는 작은 몸부림이다.


수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물이 조용히 흐르며 햇볕에 반짝였다. 새들이 옹기종기 앉아 물속에 물고기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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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영원하지 않다. 그 순간은 언젠가 지나간다. 정신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못 견디게 힘들 수 있고,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평화로운 순간을 맞이할 때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어느새 지나간다.


불혹이라고 했다. 뭐든 내가 원하는 만큼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나이.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했나 보다. 어느새 이룬 것 없이 떠밀려왔다. 한참 본인의 자리에서 인정받는 친구들은 본인이 강의 앞물결을 밀어내는 뒷물결이라고 생각할 때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뚜렷한 업적이나 성과를 만들지 못한 친구들은 본인이 강의 뒷물결에 밀려 나가고 있다고 느낄 시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강을 멍하니 바라봤다.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생각보다 평안했다. 강은 지금 보고 있는 이곳에서만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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