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기의 첫걸음은 5년 일기로
"엄마도 새해부턴 일기를 써보세요 여기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4년 차가 되었을 때 엄마에게 새 다이어리 한 권을 드리며 한 말이다 매일 똑같은데 뭘 쓰라는 거냐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라고 손사래를 치셨던 엄마가 어느새 이젠 일기 쓰기 2년 차가 되셨다
일기를 쓰라고 권하면 보통 첫 반응이 비슷하다 회사 다니는 사람은 회사, 집, 회사인인데 쓸 말이 어디 있냐 게다가 집에 가면 피곤해서 눕기 바쁜데 한가하게 무슨 일기? 또 누군가는 집에서 살림하며 애 키우는 걸 일기장에 쓰라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매일 비슷한 하룬데 뭘 일기에 써? 이렇게들 반문을 한다 마치 일기라고 하면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 방학 숙제인 탐구생활과 일기를 개학 전전날부터 부리나케 상상력을 짜내고 짜내서 썼던 그 고통의 밀린 일기 쓰기가 자신의 최선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하지만 조금 더 대화를 하다 보면 나의 생각을 써 보고 싶다, 그게 일기든 뭐든... 이런 내심의 의지들은 늘 느껴졌다 그래 일기가 싫은 게 아니었다 마음의 여유와 계기가 없었을 뿐.
다행인 건 이미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나도 한 번 일기를 써볼까'하시거나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에 꾸준히 기록하고 싶다 하시는 분들일 테다 각자의 다양한 계기 때문에도 좋고 새해 작심삼일 다짐이어도 좋다 일단 시작하자는 마음을 먹었다는 게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우리는 완벽한 준비를 통해 출발하고 싶어 한다 불안하니까.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면 장비병이 도지기 일쑤다 등산, 골프, 러닝 못지않게 기록 생활에도 저가에서 고가를 이루는 다양한 문구 아이템들이 존재한다 오죽하면 사치의 끝은 서재와 데스크 용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도구들에 관심을 들이다 보면 정작 내가 마음먹었던 [일기 쓰기]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고 현관 앞에 택배 상자만 가득 쌓여서 시작도 하기 전에 질려 버릴 수 있으니 문구에 대한 관심은 잠시 접어두자 자연스레 기록 생활이 이어지다 보면 내 취향의 문구들이 책상에 놓이게 될 테니
다이어리 한 장, 한 페이지가 주는 공포는 생각보다 크다 애써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종이 한 면의 위력에 기가 눌리지 않으려면 일단 하루에 세네 줄 쓰기로 시작하는 게 좋다 그간 쓰는 행위와 담쌓고 지냈다 하더라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으며 나 역시 그래서 5년 다이어리에 첫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5년 다이어리는 한 페이지에 5년의 일기가 기록되는 방식이다 날짜 별 기록의 양은 네 줄 정도. 나중에 보니 5년뿐만 아니라 3년, 10년 단위로 쓸 수 있는 다이어리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난 책[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추천해 준 <ONE LINE A DAY>라는 다이어리를(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하다) 2021년부터 시작해서 2025년 현재까지 쓰고 있다 내년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쓸 수 있는 두 번째 5년 다이어리도 미리 준비해 놓은 상태.
자 그럼 5년 일기에는 뭘 써야 하지? 다시 또 막막할 수 있다 나도 막상 하루 만에 도착한 다이어리를 보면서 괜히 샀나? 싶을 만큼 첫 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쓰는 행위를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갖는 부담이 있다 반면에 오랜만에 다이어리라는 물성이 주는 설렘도 꽤 컸다 한 손에 착 감기는 두께와 표지의 화사함 덕분에 어찌어찌 첫 장을 넘기면 그때부터 이미 일기 쓰기는 시작된 셈이다 쓰기 시작한 날의 페이지를 펼치니 상단에 [N O V E M B E R 2]라고 써져 있었다 처음 5년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 2021. 11. 2
날짜는 세팅되어 있으니 연도와 요일만 적어주고 이후 네 줄의 공간에 그날의 이야기를 쓰면 된다 난 첫 번째 줄에 날씨를 할애한다 매일이 똑같다고들 하지만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게 없다 겨울이더라도 어떤 날은 소복이 눈이 쌓이기도 하고 또 다음 날은 칼바람 때문에 내내 집에서 히타를 켜두기도 한다 이렇게 날씨를 적어주면 매 해 같은 날짜에 날씨가 어땠든지 볼 수 있는 것도 이 5년 일기의 재미다
그리고 나머지 세 줄에 시간순으로 나의 하루 일과를 키워드 중심으로 적어준다 오전 오후 밤까지 살림은 뭘 했고, 독서와 기록루틴 그리고 업로드 한 내용, 저녁에 집밥으로 뭘 해 먹었는지 등. 산책과 운동(요즘은 러닝이 어려워 스텝퍼로 대신) 여부, 외출을 하면 누굴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 등등 이런 사소한 일상의 나열을 짤막하게 적어주는 것만으로도 5년 일기의 하루치 기록은 넘치고 넘친다
5년 일기를 [일기 쓰기]를 시작하는 분들께 권하는 이유는 시작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과 쌓여가는 기록을 통해 이전까지 몰랐던 나를 알게 되고 꾸준히 쓰기에 대한 열망도 함께 키워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페이지에 매해 동일한 날짜에 내가 어떤 일과를 하며 보냈고 해가 바뀌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변하지 않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작년에 비해 얼마나 성장하고 반면에 오히려 더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와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내내 모르고 지나갔을 일들이다
이렇게 5년 일기를 써오다가 3년 차가 되는 시점 2023년부터 하루 일과의 키워드 중 하나를 더 확장시켜 기록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쓰다 보면 감정적인 해소를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더 길게 하루를 기록하고 싶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이때부터 한 페이지 일기가 추가되었다 [몰스킨 데일리 포켓 다이어리]에. 데일리 일기 쓰기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