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과 창의성 사이에서 찾은 보람
책상 위에는 색색의 플라스틱 병뚜껑이 산처럼 쌓여 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평소라면 재활용 수거함으로 직행했을 작은 조각들이 이날은 특별한 재료가 됐다. 바로 병뚜껑 4개를 녹여 하나의 키링을 만드는 재활용 체험이었다. 쓰레기라 여겼던 것이 손끝에서 새로운 물건으로 태어나는 순간,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활동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병뚜껑을 모으는 것이었다. 곳곳에 ‘병뚜껑 수거함’을 비치하고 참여를 독려하자,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뚜껑을 모아줬다. 평소에는 무심코 버리던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모이니 산더미 같았다. 그 무게와 양이 곧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러나 버려질 뻔한 그 뚜껑들이 이날만큼은 자원을 넘어 ‘창작의 재료’가 되었다.
이쁜 키링이 되기 위해서는 오물이 없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병뚜껑 세척 후 건조도 따로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제일 먼저 병뚜껑 더미 속에서 마음에 드는 색을 골랐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지구색인 파랑과 연두를 모았고, 누군가는 친구와 같은 색을 맞추려 애썼다. 또 어떤 이는 서로 다른 색을 섞어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다.
뚜껑을 선택하는 단순한 과정이었지만, 거기에는 자기 취향과 이야기가 담겼다. 그리고 그 선택이 곧 작품의 시작이 되었다. 혁신은 거창한 아이디어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색 하나를 고르는 행위’에서도 싹튼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직접 경험한 셈이었다.
작업대에서는 병뚜껑들이 고열로 서서히 녹아내렸다. 단단하던 플라스틱이 말랑해지고, 여러 색이 뒤섞이며 전혀 새로운 무늬가 생겨났다. 학생들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감탄했다.
“이게 정말 아까 그 뚜껑 맞아요?”
“색이 섞이니까 완전히 다른 느낌이네요!”
뚜껑 네 개가 합쳐져 하나의 작은 판이 되고, 다시 금형에 눌려 동그란 키링으로 완성되는 순간, 학생들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금형은 지구, 하트, 고양이, 다이아몬드, 양 등으로 친근하고 귀여운 것으로 만들었다.
찍힌 모양은 사람들이 선택한 대로 테투리를 넣고 빼기도 하고 사이드를 원형이나 네모로 했다.
중간에 고리를 끼울 구멍을 뚫어 식기를 기다렸다.
완성된 키링들을 한데 모아두니, 그 자체로 전시회 같았다. 파스텔처럼 은은한 색도 있었고, 강렬하게 대조되는 패턴도 있었다. 같은 병뚜껑이라도 섞이는 방식, 눌리는 압력, 선택한 색의 조합에 따라 결과물은 전혀 달라졌다.
이 광경이 보여주는 건 명확했다. 재료는 같아도, 각자의 손끝에서 나오는 결과는 다르다.
사회혁신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자원을 두고도 어떤 시선과 어떤 시도를 더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길이 열린다.
행사가 끝나고 나면 남는 건 보통 ‘참여 인원 150명’, ‘수거한 병뚜껑 104kg’ 같은 통계다. 물론 이런 숫자는 사업 보고서에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잊지 못하는 건 키링을 손에 쥔 사람들의 표정이다.
“이건 그냥 액세서리가 아니라, 제가 직접 만든 지구의 조각 같아요.”
“버려질 걸 다시 살린 거니까 더 특별해요.”
숫자가 기록하지 못하는 건 바로 이런 생생한 목소리다. 혁신의 진짜 성과는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경험 속에 있다.
우리는 종종 사회혁신을 거대한 프로젝트, 제도 변화, 대규모 투입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날의 키링은 말했다. 혁신은 손끝에서 시작된다. 작은 뚜껑 네 개를 모아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는 그 경험 속에서, 사람들은 “나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비록 키링은 시간이 지나 색이 바래고 흠집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을 함께한 기억, ‘내가 직접 만든 혁신의 조각’이라는 자부심은 오래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언젠가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재활용 플라스틱 키링 만들기’는 단순한 체험 활동을 넘어, 버려진 것에서 가치를 되찾고, 다양성을 통해 혁신을 발견하며, 작은 참여가 큰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사회혁신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병뚜껑 네 개, 학생의 손끝, 그리고 웃음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작은 혁신들이 모여 내일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