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50에 쫓겨난 나는 사회를 바꾼다

25년 업무에서 강제 부서 이동, 그리고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이야기

by 소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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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이야기.


25년을 한 업무에서 버틴 사람에게 “이제 다른 곳으로 가보라”는 말은 곧 인생의 지각변동과 같다.

나에게 그 말은 미디어와는 끝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홈페이지 관리와 콘텐츠 기획, 운영 등 익숙한 일들이 내 일상의 전부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 선택도 아니고, “임 : xx 로 면 : xxx 에서”라는 공문 한줄이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퇴사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서럽던지.

‘쫓겨났다’는 말이 입안에서 씹히듯 맴돌았다.

50이라는 숫자가 나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30년 동안 익힌 기술과 노하우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된 것 같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낯선 지역, 새로 배워야 할 일, 전혀 모르는 분야, 내가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솔직히 말해 처음엔 억울했다.


업무인수인계를 받으러 갔던 날, ‘글로벌사회혁신단’이라는 문패를 본 순간 뭔가 묘한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이름부터 생소하고, 혁신이라니—이제껏 내가 다뤄온 ‘미디어전략’과는 결이 달랐다. 게다가 사회봉사단 업무까지 겸직이라니. 학생들의 사회봉사 교과목 성적 학사처리, 프로그램 개발, 기관 발굴, 교수 컨택, 민원 대응, 지역연계 프로그램 운영…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모르던 세계였다.


처음 몇 주는 매일이 ‘첫 출근’ 이고, 야근이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이건 내가 아는 영역이 아니잖아’ 하며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봉사활동 소감문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검토하면서, ‘이게 그냥 업무가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며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봉사’가 아닌 ‘성장’을 보았다. 누군가는 장애 아동을 돕고, 누군가는 어르신을 돕고, 누군가는 환경정화에 참여했다. 그들의 한 문장, 한문장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글로벌사회혁신단의 일은 더 낯설었다. SDGs는 들어 본적이 있지만, 기후환경, 불평등 등 17개의 항목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노플라스틱’, ‘환경 한마당’, ‘리크레용 만들기’, ‘키링 만들기’ 같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작은 실천이 이렇게 큰 울림을 줄 수 있구나’라는 걸 배웠다. 행사 후 학생들과 시민들이 웃는 얼굴로 “좋은 경험이었어요”라고 말할 때면 묘하게 가슴이 벅찼다.


나도 모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멋짐’과 ‘성과’에 집착했다. 미디어전략팀에서는 조회수와 윗분들의 반응, 타 기관의 '칭찬' 이 성과의 전부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회봉사 이수율, 협력 기관의 수, 프로그램 운영수 등 이 가장 큰 성과였다. 내가 하던 보고서 작성이나 통계 정리도 누군가의 의미 있는 경험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솔직히 50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던져진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부서 이동이 나를 ‘쫓겨난 사람’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으로 바꿔주고 있다. 어쩌면 나는 25년 동안 쌓아온 껍질을 벗고, 이제야 진짜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미디어전략가’에서 ‘사회혁신 초보’로, 그리고 ‘단순 행정 담당자’에서 ‘사람을 잇는 다리’로 바뀌어가는 내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매일이 새롭고, 매일이 시험대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다음 화에서는 팀에서의 마지막 날,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든 그 순간을 이야기하려 한다. ‘쫓겨남’이 내 인생을 어떻게 흔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서려고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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