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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Dec 12. 2020

행복한 비밀

행복한 비밀

올해 인천으로 발령이 나서 또 주말부부가 됐다. 아내는 아이 둘을 혼자 돌본다. 5년 전에는 힘들다며 짜증을 많이 냈는데, 요즘은 덜 그런다. 아이들이 커서 자기 역할도 조금씩 할뿐더러 떨어져 지내는 것도 익숙해 진듯하다.

격주로 내려가면 집사람과는 술친구가 된다. 주에는 참치를 시켰다. 코로나 19 때문에 배달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 선입견과는 달리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맛도 있었다. 안주가 좋으니 술이 술술 넘어갔다. 알딸딸해질 무렵 아내의 추궁이 시작됐다. 몇 달 전부터 내가 취했다 싶으면 반복되는 일이다. 아무 말 안 할 테니 알려만 달란다. 내 입도 근질거렸다. 봉선화 씨앗처럼 톡 건드리면 터져 나올 것 같다. 이번에도 손사래를 치며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 비밀은 올 초부터 시작됐다.

설에 시골집에 갔다. 바깥바람을 쐬고 있는데, 오랜만에 내려온 매제가 다가왔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끝날 무렵 솔깃한 말을 했다. 의약 회사 연구원으로 있는 친구한테 들은 고급 정보라며 여윳돈이 있으면 조금만 투자해 보란다. 몇 년 전에도 똑같은 이야기에 혹해 샀다가 손해만 봤었다. 그때 다시는 안 할 생각으로 주식 애플도 지웠다. 매제는 이번에도 자기 회사라도 되는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그냥 웃어넘겼다.

연휴가 끝나고 그 말이 계속 아른거렸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좋은 내용만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진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은 지우는 것만큼이나 깔기도 쉬웠다. 그리고 비상금으로 그 주식을 샀다. 이제 오를 일만 기다리면 되겠지 싶었다.

2월 초 본청으로 발령이 났다. 중국만의 일이라 여겼던 코로나 19는 3월 들어 빠르게 퍼졌다. 주식 시장이 먼저 민감하게 반응했다. 큰 폭으로 빠지는 게 일상이었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야 하니 주식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견딜 만했다. 3월 중순 계좌를 봤더니 손실이 35퍼센트였다. 속이 쓰렸다. 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몇 개를 사고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몇 번이나 먹었을까 계산했더니 현기증까지 났다. 냉탕에 들어가면 처음만 견디기 힘든 것처럼 매일 그러니 무덤덤해졌다. 다음 날 정확히 24퍼센트가 떨어졌다. 근 한 달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이제는 손절매도 무의미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것만 떨어진 게 아니어서, 매제를 원망하는 마음은 덜 했다는 것이다.

그다음 날부터 반전이 시작됐다. 동학 개미 열풍이 불더니 일주일 만에 130퍼센트가 올랐다. 며칠 후 미련 없이 팔았다. 또 떨어지면 이제는 매제를 정말 미워할 것 같았다. 그돈으로 좋아 보이는 주식들을 사들였다. 몇 달 후 내 계좌는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다. 3월 이후 우리나라 코스피 상승률이 60퍼센트에 달하는데, 그보다도 훨씬 수익률이 높았다.

아내는 몇 년 전부터 주식을 했다. 냉철한 데다가 계좌 관리도 철저해서 은행 이자보다 매년 높은 수익을 거둔다. 종종 술안주로 주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사람은 나도 할 거라고 짐작한 것 같다. 내가 사라고 했던 종목들이 많이 올라서, 더 궁금할 것이다. 아내는 내가 많이 샀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리곤 내가 술에 취하면 계좌를 보여 달라고 조른다. 취기가 오르면 자랑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은 기쁘겠지만, 내 풍요로운 삶은 끝이라는 생각에 감정을 억누른다.

가끔 로또 이 등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용돈 타 쓰는 유부남들의 로망일 것이다. 그 돈으로 해외여행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내 물건도 사고, 가끔은 아내에게 큰 선물도 해주고 싶었다. 코로나 19로 기억되는 올해, 그 상상은 대부분 현실이 됐다. 물론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이지만 말이다.

매일 확진자가 늘어 걱정이다. 백신이 곧 나온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내년에는 아무 걱정없이 가족과 제주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다. 모든 비용은 내가 낼 생각이다. 올해 만들어진 행복한 비밀이 깨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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