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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Dec 04. 2021

카톡의 지배

카톡의 지배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을 인류의 대 사기극이자, 대재앙이라고 했다. 먹을 것을 사냥하고 채집하던 인류가 농업 혁명 때문에 온종일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수렵 채집인은 배고프고 고됐지만 삶은 여유로웠다. 그 반면, 농업인은 밀을 재배하면서 허기를 해결하게 됐지만, 잉여 시간을 빼앗겼다. 그는 ‘인류가 밀을 길들인 게 아니라, 밀이 인류를 길들였다.’라고 역설했다.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을 지나 4차 산업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밀을 대신해 스마트폰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카톡(모바일 메신저)이다.


나는 약 17년째 해양오염 방제 업무를 하고 있다. 선박이나 시설에서 바다로 기름이 유출되면 빠르게 제거해서 환경 피해를 막는 일이다. 그러려면 사고 초기에 현장 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효율적인 방제 작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0년 카톡이 나오면서부터 사고를 처리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이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단체 카톡 방부터 만들어진다. 그 규모와 중요도에 따라 참여자 수는 늘어난다. 수백 명이 될 때도 있다. 그 방에는 현장 사진과 동영상, 중요 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방제 방향을 설정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들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여러 사람의 의견이 오가며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그렇다고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카톡, 카톡’이 울리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업무가 끝난 깊은 밤에 들리면 더 그렇다. 대부분은 사고 정보들이다. 나와 연관성이 없는 내용도 수시로 올라온다. 그렇다고 방을 나갈 수도 없다. 누가 나갔는지 확인이 되고, 언젠가는 필요한 정보도 올라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갈 때조차 마찬가지다. 휴가 때는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카톡이 옭아매는 듯하다. 


올해 5월에 시장 조사 업체 오픈서베이가 국내 20대에서 50대 직장인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카톡이 업무용으로 쓰이는 데 스트레스를 받는다.’라는 응답이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대부분은 공과 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유럽에서는 근무시간 외 쉴 권리를 침해하는 회사의 연락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대 국회에서 일명 ‘카톡 금지법’이 추진됐으나 과잉 규제라는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카톡은 직장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그만큼 업무를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고 편리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장점 때문에 직장으로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마저 빼앗기고 있다. 카톡이 직장인의 쉬는 시간만큼은 ‘지배’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쓰는 사회적 약속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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