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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01. 2023

캐나다 출장

캐나다 출장 
 
9월 18일부터 23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 다녀왔다.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등 4개국 해상 치안 기관장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4월 전문가 회의 때는 설렘이 컸다면, 이번에는 부담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월요일 저녁 여섯 시 30분 비행기를 탔다. 좁은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면서, 아홉 시간을 보냈다. 도착하니 월요일 낮 한 시였다. 캐나다의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상쾌했다.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런다고 피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환영 만찬이 저녁 여섯 시에 열렸다.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스탠팅 파티는 호텔 36층에서 열렸다. 밴쿠버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배를 배경으로 노을이 졌다. 20년 전, 나는 배를 탔고, 그 바다에 떠 있었다. 지금은 시원한 맥주잔을 들고,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이면 잘 살았다는 생각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캐나다의 행사는 매우 실용적이다. 격식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기관장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인사말도 없다. 음식은 간소하게 차린다. 술은 개인이 사 먹어야 한다. 중요 인사의 동선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고, 음식은 성대하게 차려내는 우리 문화와는 차이가 많다. 그렇다고 캐나다의 행사가 엉망인 것도 아니다. 어쩌면 더 내실 있다. 물론 우리 문화가 꼭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실용적으로 잘 버무린다면, 행사의 품격은 높이고 실속을 더 챙길 수 있을 것이다. 


4월에 만났던 그룹 멤버와 인사를 나눴다. 나는 4월부터 영어 공부 다시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한 강사는 하루에 30분씩 영어 공부를 한다면 실력이 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루에 여섯 시간쯤 반 년은 노력해야 조금할 수 있다고 했다. 멤버들을 만나고 나서 그의 말이 떠올랐다. 내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의장단 미팅이 있었다. 우리 포럼에는 총 여섯 개 그룹이 있다. 원래는 중국, 러시아까지 해서 각국이 한 개 그룹의 의장을 맡는다. 아쉽게도 중국과 러시아는 함께하지 못했다. 우리 그룹은 한국이 의장국이고, 의장은 내가 맡았다. 의장단은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다. 일본 의장단은 영어 실력이 나와 비슷했다. 그의 발음을 듣고 평안해졌다. 그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회의는 하 주무관이 주도해서 진행했다. 그는 이 회의에 여섯 번쯤 참석한 전문가다. 나는 의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우리 그룹은 각국이 돌아가면서 과제 진행 결과를 발표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중요 사고 정보를 공유했다. 


다음 날은 총회 준비를 했다. 하 주무관은 그룹원들과 발표 자료를 만들고, 나는 발표문을 썼다. 그날 저녁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문장은 짧게 썼다. 그래야 술술 익힌다. 사족은 줄이고, 감동을 줄 표현도 넣었다. 읽어 보니 흐름이 끊기지도 않고 내용도 풍부했다. 만족스러웠다. 


총회 발표 날, 캐나다에 와서 제일 잘 잤다. 그날 저녁에 생각했던 걸 실행에 옮겼다. 일곱 시쯤 스타벅스에 앉아, 대본을 읽으며 준비했다. 멋있을 거 같아서 해본 거였는데, 효과도 좋았다. 한 시간 전에 회의장에 도착해 분위기를 익혔다. 통역사와도 인사를 나눴다. 맴버들과 직원들이 잘할 거라며 응원했다. 총회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더 그랬다. 일본은 내 예상대로 일본어로 발표했다. 내 순서가 다가오자 그 두근거림은 오히려 잦아졌다. 


연단에 섰다. 각 국의 참석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긴장되지 않았다. 가끔 발음이 꼬였지만, 통역이 있으니 걱정 없었다. 반응이 좋은 게 느껴졌다. 마지막 감동을 주려고 넣은 표현에서 흐뭇하게 웃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발표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미국 단장이 악수를 청했다. 그냥 인사치레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좋게 생각하고 싶다. 우리나라 단장님도 긴장하지 않고 잘했다며 내 손을 잡았다. 


기념 사진을 찍고 총회는 마무리됐다. 대사관에서 근무한다는 칼o이 다가와서 한국말로 발표가 아주 좋았다고 엄지를 세웠다. 일본 의장도 나를 추켜세우며, 한국말로 발표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도 그가 고맙기는 마찬가지였다. 모국어와 통역이 있는데, 영어로 발표하지 않은 걸 왜 서로 고마워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칼o과 함께 바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녀는 1년 가까이 한국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말을 배우려고 어학원에도 다니고 있었다. 나만 빼고 영어를 다 잘했지만, 그녀는 모르는 단어를 번역기를 돌려가며 한국어로만 말했다. 우리는 그녀의 모습이 하멜 같다고 놀렸다. 서툴지만 한국어를 익히려고 애쓰는 그녀가 아름다웠다. 그녀를 보며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게 어려운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올해 20년 만에 캐나다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다시는 그곳에 못 갈지도 모르겠다. 이글과 사진으로 캐나다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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