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깊은 바다 Oct 01. 2019

빨리 먹는 버릇

2019. 5. 16.


음식을 빨리 먹는 버릇이 있다. 밥도 서너 번 대충 씹고 삼켜 버린다. 면 종류는 흡입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워낙 빨라서 동석자가 절반도 먹지 못해 서로 민망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핀잔과 충고도 많이 받아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도 했다. 의식적으로 씹는 횟수를 세거나, 다른 사람과 속도를 맞추는 식이다. 그러나 몸에 배었는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런 식습관은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넘게 승선하면서 생겼다. 내가 탔던 배는 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곡물이나 원목 같은 화물을 운송했다. 나는 주기관과 발전기 같은 기계들을 관리했다. 기관부는 배의 선령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노후 선박은 3명의 기관사가 부원과 함께 4시간씩 돌아가며 24시간 당직을 선다. 최신 선박은 장비들이 잘 갖춰져 있어 '데이 워크'로 일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함께 일하고 일과 후나 공휴일에는 쉬는 방식이다. 보통은 후자를 선호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1년 정도는 그 방식으로 일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지금은 6시에 일어나지만 20대 초반에는 아침잠이 많아서 7시에 일어나면서도 매번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관실은 주기관의 배기 열로 평균 온도가 38도에 달한다. 조금만 일해도 작업복은 땀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다. 여기에 잠 부족까지 더해지니 오전부터 녹초가 됐다. 오후에 일하려면 낮잠은 선택이 아니었다. 식사 시간과 오침 시간은 반비례한다. 최대한 밥 먹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까지는 17일쯤 항해한다. 변하지 않는 수평선과 배의 일정한 박동 소리는 일상을 더 단조롭게 한다. 그래서 선원들은 식사 시간을 가장 기다린다. 식단이 주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배의 열악한 환경과 다르게 식단은 호화스럽다. 아침은 입맛 없는 선원들을 위해 된장국과 달걀 프라이, 점심은 꼬리찜, 비빔밥, 생선구이 같은 간단한 음식, 저녁에는 스테이크, 갈비, 생선회 같은 영양 넘치는 음식과 술이 함께 나온다. 어쩌면 저녁 때문에 점심은 배만 채우면 되는 한 끼였는지 모르겠다.

점심은 5분쯤이면 마무리됐다. 젊고 계급이 낮을수록 속도는 더 빨라진다. 항해사나 노후 선박 기관사는 당직을 교대해야 하고 데이 워크를 하는 선원들은 오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배를 탔던 사람들 중에는 빨리 먹는 사람이 많다.

요즘 들어 이 버릇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날 아들의 밥 먹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밥을 입안에 가득 넣고 우걱우걱 씹는 것이다. 천박하게 먹지 말라고 타이르자 집사람은 이게 내 모습이라고 한다. 딸은 급식을 1, 2등으로 빨리 먹는다고 자랑을 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제 몸에서 먼저 반응을 한다. 역도성 식도염인지 트림이 많이 나오고 속이 더부룩할 때도 많다. 오사카 대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빨리 먹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뚱뚱해질 위험이 3배 정도 높다고 한다. 내 늘어나는 뱃살도 이런 버릇 때문 인 것 같다.

빨리 먹기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부지런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다 보니 생긴 습관이라고 위안 삼아 본다. 몸에 밴 것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교양과 품위도 갖추어야 할 나이다. 그 기본이 식사 예절이다. 같이 식사하는 사람을 배려하고 내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이 버릇을 고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