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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04. 2019

개죽음

2019. 10. 04.

개죽음

갯가 버들강아지는 이미 털이 소복하게 올랐다. 햇볕은 포근했지만 아직 찬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했다. 나는 일곱 살 되는 해 봄이 되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십 리를 걸어 다녔으니 공부보다 학교를 오가는 게 더 큰 일이었다. 아직 어울리지 않는 큰 가방을 메고 집에 오면 기운이 쑥 빠졌다. 그런 나를 먼저 반기는 것은 누렁이였다. 처마 밑 양지바른 곳에서 졸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대문 밖까지 쏜살같이 달려온다. 호흡 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 아는 것 같다.

3년생 똥개였지만 똑똑하고 애교가 많아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 아버지가 좋아했다. 장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십 리 밖 면 소재지로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자전거를 이용했다. 누렁이는 매번 따라 나섰다. 돌아가라고 성을 내고 돌멩이도 던져 보지만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버스에 탄 주인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누렁이는 먼 길을 돌아왔다. 거기다 가끔 까투리를 잡아 고스란히 바쳤다. 아버지는 이웃과 나눌 안줏거리와 자랑거리까지 마련해 주었던 누렁이를 요즘도 가끔 회상한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친구들과 놀다 오니 어딘가 허전했다. 이미 나타났어야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궁이에는 장작이 타고 가마솥 증기는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슬프긴 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하면서 조금은 먹기도 했다. 그렇게 누렁이는 가장 따르던 주인에게 개죽음을 당했다.

며칠 후 마당에는 똥강아지 한 마리가 낑낑 대고 있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시골집에서는 짧은 주기로 키우는 개가 바뀌었다. 반려견이 아니라 애완견이었다. 복날 잡아 먹거나 살림살이에 보태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었다. '1인 1 닭'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고기가 흔해졌지만 예전에는 닭을 잡으면 무를 넣고 탕을 끓여 며칠을 먹었다. 농부에게 여름은 생존을 위한 시련의 시간이다. 모내기와 같은 들일에 지쳐있는 데다 무더위까지 시작되면 맥이 빠지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는 개고기는 뽀빠이의 시금치처럼 힘겨운 농사일을 이겨 내는 힘의 원천이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보신탕을 즐겼으나, 그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농사를 기계로 짓고 조금은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개를 잡는 것도 보기 힘들어졌다. 동네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수록 살생이 두려워진다고 한다.

요즘 시골에는 누렁이를 대신해 발발이를 많이 키운다. 노인만 있는 집에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서다. 잡아 먹힐 걱정은 없다. 그렇다고 개팔자가 상팔자는 아니다. 대부분의 개들은 2미터 남짓한 쇠 목줄에 메여 산다. 산책이란 것도 없으니 삶의 질은 누렁이보다 더 낮아졌다. 부모님에게 개를 풀어 키우자고 해 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된단다. 개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면 좋으련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시골집에 가면 개와 함께 산책을 한다. 그래야 마음이 좀 편하다. 그러면 꼭 따라오는 개가 있는데, 동네에서 유일하게 풀어 키우는 바둑이다. 어머니에게 놀랄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이 그날이란다. 바둑이가 아무 데나 똥을 싸서 괄괄한 성격의 정환이 아저씨가 불평하자 주인 할머니가 잡아 먹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붙임성이 좋아 친해졌는데,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저씨 트럭에메여 안절부절못하는 바둑이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것밖에는.

몇 주 후 시골에 갔는데 그 녀석이 나를 보고 달려왔다. 비록 구해 주지는 못했지만 살아 있는 것이 반가웠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유를 알게됐다. 아저씨는 보기와 다르게 닭도 잡지 못할 만큼 마음이 여렸다. 아무 데서나 똥을 싸는 버릇을 고치려고 무서운 협박을 했던 것이다. 바둑이는 그것을 모르는지 자유롭고 한가롭게 하루 종일 동네를 쏘다닌다. 여기저기 똥을 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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