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깊은 바다 Oct 12. 2019

월출산 구정봉 이야기

2019. 10. 12. (토)

사색하고 싶다면 산에 오르자. 오감을 살려야 더 좋다. 푸른 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보자. 낙엽이 미끄러지는 소리까지 들어야 한다. 나무를 만져보자. 지나간 사람의 촉감이 느껴질지 모른다. 숲의 향기는 온몸으로 맡아야 한다. 휴대전화와 이어폰은 배낭에 넣어버리자. 그래야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토요일 아침, 템플스테이에 가는 아들을 데려다주러 도갑사에 갔다. 월출산에 대여섯 번 올랐지만 이곳은 처음이다. 절 입구 480년 된 팽나무도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지 영양제를 주렁주렁 꼽고 있다. 그렇지만 위엄 있고 푸르르다.

480년된 팽나무

도갑사에는 보물이 많다.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절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향 냄새도 좋다. 할머니 향기 같은 것이 고향에 온 기분이랄까?

도갑사 오층석탑

도갑사에서 구정봉까지는 왕복 8.4km다. 11시에 출발해  13시경 구정봉에 올랐고, 15시에 도갑사에 도착했다.

월출산 탐방로 안내도

산 중턱까지는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함께한다. 물소리를 들으면 모든 상념이 사라진다. 오랜만에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팟캐스트나 음악이 없어야 산 소통할 수 있다.

산 중턱까지 있는 계곡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 태양의 온기도 느껴보자. 바람에 흔들리며 나는 나무들의 울음과 가을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풀벌레들의 작은 합창도 들을 수 있다.

숲사이로 보이는 햇빛

억새봉까지 오르면 구절초가 보인다. 파란 하늘과 이름 모를 잡초가 있어서 더 잘 어울린다. 려한 국화보다는 수수한 구절초가 좋은 것이 영락없는 촌놈이다.

억새봉 구절초

구정봉은 '바위얼굴'이라고도 불린다. 천황봉에서 바라보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구정봉에는 9개의 웅덩이가 있는데,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구정봉 안내판
구정봉에서 바라본 월출산

오랜만에 땀을 흘렸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뇌에게 휴식을 주려면 산에 오르자. 우리 몸은 신기하게도 힘을 써야 더 큰 힘이 생긴다. 도 마찬가지다.


산에 오르는 묘미를 깨달은 하루였다. 사색을 하려면 월출산에 오르자.


* 월출산에 처음 오르시는 분이라면 경포대에서 천황봉으로 오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입장료, 주차료도 없을뿐더러 등산하기도 더 좋답니다.


인류의 조상이 숲에서 성장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숲에 친근감을 느낀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저 나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나뭇잎들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 햇빛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무는 주위에 그늘을 드리움으로써 자기 주위의 식물들과 생존경쟁을 한다. 나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면 나무들이 나른한 은총(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밀고 믿치며 씨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무는 햇빛을 성존의 동력으로 삼는 아름답고 위대한 기계이다. 땅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자신에게 필요한 음식물을 합성한 줄 안다. 그 음식의 일부는 물론 우
리 인간이 탐내는 것이기도 하다. 합성한 탄수화물은 식물 자신의 일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궁극적으로 식물에 기생해서 사는 우리 같은 동물은 식물이 합성해 놓은 탄수화물을 훔쳐서 자기 일을 수행하는 데 이용한다. 우리는 식물을 먹음으로써 탄수화물을 섭취한 다음 호흡으로 혈액 속에 불러들인 산소와 결합시켜 움
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리고 우리가 호흡 과정에서 받은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에게 흡수돼 탄수화물 합성에 재활용된다. 동물과 식물이 각각 상대가 토해 내는 것을 다시 들이마신다니, 이것이야말로 환상적인 협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지구차원에서 실현되는 일종의 구강 대 기공의 인공 호흡인 것이다.

(칼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87p )


작가의 이전글 개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