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쓰기 / 황성훈
수영장에 다녀온 딸은 가방을 뒤지더니 수영복을 놓고 왔다고 했다. 그 전에도 우산이나 학용품을 많이 잃어버렸다. 아내는 딸에게 누구를 닮아 그렇게 덤벙대냐며 화를 냈다. 물론 나 들으라고 한 얘기다. 둘이 가서 찾아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도 어려서부터 꼼꼼하지 못했다. 물건을 만지면 고장 나기 일쑤였고 농사를 돕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됐다. 전형적인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장갑은 매년 한 짝씩 잃어버렸다. 여행을 가서도 물건을 하나씩 놓고 왔다. 그런 내가 불안한지 집사람은 다시 한번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한다. 결과는 똑같았다. 차 트렁크에 김치통을 대충 놔서 빨간 국물로 범벅이 됐고, 냉장고 반찬통도 잘못 놔서 깨진 적이 여러 번이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샌다고 회사에서도 그랬다. 일을 빨랐지만 실수가 잦았다. 보안 점검을 하면 내 책상은 요주의 대상이었다. 서랍은 잠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이면 열려 있었다. 기획안의 오탈자는 기안을 올리고 나면 눈에 크게 띄었다. 진급하고 예산 업무를 맡게 됐다. 나 자신을 너무 잘 알아서 부담이 됐다. 200억에 달하는 돈을 확보하여, 지방 관서에 배정하고 결산까지 해야 했다. 신이 준 시련 같았다. 꼼꼼히 한다고 했는데도 역부족이었다. 관련 부서 담당자에게 몇 번의 확인 전화를 받으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읽었던 책 중에 나를 위해 쓴 것 같은 문장이 있었다.
명나라 학자 정선은 "일 처리가 재빠르고 물 흐르듯 거침이 없어 책상 위에 처리할 서류가 없어진다면 기쁜 일이지만, 바삐 서두르다가는 열에 아홉은 실수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히려 정밀하고 자세하며 침착하고 무게 있게 처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을 책상에 붙여 놓고 휴대전화에도 저장했다. 그리고 수시로 봤다. 그 덕분인지 실수는 많이 줄었다. 연말에는 우수한 성과를 올려 상사들과 관련 부서 담당자들에게도 좋은 평도 들었다. 하지만 40여 년 몸에 밴 습관이 완벽하게 바뀌지는 않았다.
올해 초부터 글쓰기를 배운다. 매주 제시된 글감으로 글을 쓰면 교수님이 교정해 준다. 오탈자는 물론 띄어쓰기에 비문까지 세심하게 손본다. 대충 쓰거나 실수가 있으면 내 문장은 잔인하고 처절하게 죽어 나간다. 글을 살리려면 보고 또 보고 계속 고쳐야 한다. 이러면서 많이 꼼꼼해졌다. 문서를 만들면 몇 번씩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꼼꼼하지 못한 것이 내 단점이었다면 장점은 성실함이다. 글쓰기 반에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과제를 냈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무리한다. 그러다 보니 20편 가까이 모였다. 가끔 집사람에게 글이 좋다고 칭찬도 듣는다. 오해가 있던 직원과는 글을 쓰고 나서 먼저 사과하자 앙금이 풀려 화해도 했다. 무엇보다 내 기억을 문자로 형상화하는 것이 의미 있다. 사장될 뻔한 삶의 추억을 영원히 살려 내는 것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를 상상해 볼 것이다. 털털한 어린 시절부터 진중하게 글을 쓰는 현재의 나를. 글은 마음속까지 그려낸 자화상이다. 강원국은 말했다. "이래도 안 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