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망작이라 해도 사랑할 수밖에
가끔 명작을 보면서 ‘까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사실 조금 난감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망작을 보고 ‘빨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이와 비슷하다.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이 필자에겐 그런 작품이다.
명명백백하게도 ‘배트맨 대 슈퍼맨’은 최고의 망작으로 등극하고 있는 분위기다. 평론가들이 가차없이 까내리는 거야 블록버스터에겐 자주 있는 일지만 관객들마저 조롱하고 농담으로 포장하는 작품이라면, 단순히 ‘재밌다’는 이유로 칭찬하기엔 그 사람까지 ‘영알못’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은 개인적으로 수작 이상이었다. 이 작품은 아이맥스에서만 2회차 관람했는데, 그때마다 거부할 수 없는 황홀감을 느꼈다. ‘몰입당해서 재밌다’라던가 ‘요소가 훌륭해서 좋았다’라던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이 작품을 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단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팬보이라고 자처한다지만,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DC코믹스 팬들에겐 아예 재앙처럼 취급받고 있어서 ‘디밍아웃’이라고 하기에도 무척 애매한 입장이다. 관람이 끝난 후 찬찬히 되짚어보면 분명히 구멍도 많고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터지는 분도 있음을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만일 ‘배트맨 대 슈퍼맨’을 다시 볼 거냐고 하면 다시 볼 의향이 있을 정도로 깊은 애정이 있다.
감상이라기보다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의 비주얼 자체는 무척 우수하다. 어두운 배트맨과 비인간적인 슈퍼맨에 맞춰 차가운 어둠을 형상화했고, 파괴적인 액션씬들로 이 작품의 소재를 부각시켰다. 무엇보다 배우들-벤 애플렉, 헨리 카빌, 제시 아이젠버그, 갤 가돗이 만드는 시너지는 블록버스터에서도 부각될 정도이다.
또 잭 스나이더 작품답게 오프닝 장면이 무척 일품인 것, 그리고 한스 짐머와 정키 XL이 함께한 OST가 다양한 장르를 취하면서도 퀄리티도 굉장하는 것도 장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더우먼의 환상적인 존재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뒤죽박죽 전개도 몰입을 하게끔 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오락가락해서 몰입이 안된다’는 지점은 일부에겐 계속 흥미로운 떡밥을 제시하는 것이라서 장점으로 통할 수도 있다. 오히려 후반부의 슈퍼맨과 둠스데이가 맞붙는 장면이 지루하다면 더 지루했다.
그럼에도 분명 (실관객들이 드립화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이다. 첫 관람 때 실소를 자아내던 그 장면은 분명 의도는 확실한 편이지만 작품엔 해가 되는 해결방안이었기 때문이다. 자막의 문제도 있다곤 하지만 두 사람의 전사를 충분히 보여줬다고 판단한 연출법이 심리 묘사를 엉성하게 하게끔 구성됐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듯 ‘양파같은’ 영화인 것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몰입감에 잊혔던 지점들이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보여주기 위해 어물쩍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니까. 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엠블렘 문제나 마지막 배트맨의 대사 등 보여주기식의 장면도 영화의 속 빈 강정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작품에 대해 느꼈던 감정은 극장 스크린으로 이 장면들을 볼 수 있다는 일종의 안도, 행복이었다. 그동안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터뜨린 감탄이 아니라 (저급한 표현일진 몰라도) 황홀감에 흘린 신음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 망작임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애정을 느낀 작품이기에 누리꾼들과 팬보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정도이다.
막은 올랐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수많은 비판에도 워너는 잭 스나이더를 밀기로 확정을 지었고 이제 중요한 건 이 ‘배트맨 대 슈퍼맨’의 구멍을 다른 솔로영화들-원더우먼,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메울 수 있는가이다. 마블이 계속 상업적 흥행을 보장받는 브랜드로 떠오른 이상 DC 역시 심기일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