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갉아먹는 자, 누구인가
드문 일이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오프닝과 엔딩, 전혀 상반된 느낌을 준다. 시작하자마자 펼쳐지는 오프닝 크레디트에선 "와, 이 영화 만만치 않겠구나" 싶은 이미지를 주지만 막상 영화가 막을 내리는 순간 다소 어리둥절한 감정을 남긴다.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적당한 엔딩은 아니란 느낌이다.
아트디렉터로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는 수잔(에이미 아담스)이 불만족스러운 생활 속에서 전 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의 소설을 읽게 되는 내용을 담은 <녹터널 애니멀스>는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그래서 장면이 구성하는 흐름 자체가 빠르진 않지만 극 중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의 무척 폭력적이면서도 공포를 자아내는 내용과 수잔의 인생과 현재의 심리가 녹아들면서 진득하게 관객들의 눈길을 끈다.
특히 <녹터널 애니멀스>가 재밌는 건 두 이야기가 만드는 충돌 때문이다. 권태로운 상류층의 삶이 담긴 현실과 폭력배들에게 가족을 잃은 남자를 다룬 소설이 서로 다른 내용은 물론 이미지도 궤를 달리한다.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꽉 짜인 미장센을 유지하고, 반대로 텍사스의 황폐함과 인물들의 거친 표정들이 나열되면서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1인 2역을 해낸 제이크 질렌할과 소설을 읽으면서 흔들리는 수잔을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 역시 빛을 발한다. 에이미 아담스는 소설을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에드워드의 이미지를 대입해 자신의 삶을 되짚는 수잔의 모습을 깊이 있는 연기로 묵직하게 표현한다. 제이크 질렌할은 섬세한 에드워드와 격정적인 상황에 놓인 토니 역으로 그 특유의 묘한 미소를 한껏 드러낸다.
그러나 <녹터널 애니멀스>가 지나치게 강렬한 오프닝으로 영화를 열었던 탓일까. 2시간 동안 집중력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흥미를 돋우면서 동시에 내부 이야기가 역으로 외부 이야기까지 역전하는 패착에 빠진 느낌이다. 오프닝과 수잔이 처음 집에 도착한 장면에서 여성성이 부각돼 여성에 대한 고찰을 드러낼까 싶었지만, 영화의 결말부까지 다다르면 의외로 그런 느낌은 전혀 남지 않는다.
또한 극 중 '녹터널 애니멀스'는 배경이나 인물 등을 통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로스트 인 더스트> 등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내용과 주제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외면을 감싼 <녹터널 애니머스>가 오히려 결말부의 (의도했던 감정처럼) 다소 허망한 느낌으로 방점을 찍는 것이 기묘하게 삐걱거린다.
하지만 <녹터널 애니멀스>는 다시금 곱씹을만한 영화이다. 누구나 상상하는 화려한 삶에서 피어나는 불행, 그리고 끊임없이 그것을 고민하면서도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수잔이 남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잔인하지만 <녹터널 애니멀스>는 내면을 파먹는 그 원인을 지적하는, 혹은 그런 이들에게 스스로 허영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우화처럼 사람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