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영화라 부를 수 있는지
부인하고 싶진 않았다. <더 킹>은 분명 재밌고, 세련되며 나름의 메시지까지 갖춘 상업영화이다.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서 아마도 <더 킹>을 본 관객이라면 마음에 들어할 요소가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확신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더 킹>이 과연 영화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다소 의구심이 든다.
약 20년 간의 현대사를 박태수(조인성)란 인물로 재빠르게 짚어내는 <더 킹>은 한재림 감독의 능수능란한 연출이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세 검사의 희희낙락한 농담 따먹기에서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도입부를 시작한 이 영화는 이후 박태수의 내레이션과 함께 현란한 화면들로 단번에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빠른 전개를 담아낸 몇몇 장면들에선 아주 간결하면서도 세련되게 세월의 공백을 메우는 인상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박태수가 양동철(배성우)을 통해 한강식(정우성), 최두일(류준열)과 만나게 된 이후에는 사실 상투적인 스토리에도 각 배우들이 구축한 캐릭터들, 그리고 여전히 속도감을 늦추지 않는 전개,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조연들 덕에 꾸준히 흥미를 유발한다. 이 안에는 일반적인 '엘리트'들의 이면이 '욕망에 찬 인간'이란 것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2시간이 다 될 무렵부터 <더 킹>을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을 급선회하며 '메시지'를 향한 절차를 밟는다. 그리고 그때야 문득 깨닫게 되는 건 <더 킹>에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갈등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강식과 박태수 일당이 권력을 잡기 위해 계속 움직이는 장면들은 있으나 거기에는 '왕'이 되기 위한 직접적인 갈등이 부재한다.
좋게 보면 이런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은 것이 진정한 '암투극'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킹>은 분명히 영화다. 이는 인물의 심리를 좀 더 세심하게 묘사하는 문학과는 또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킹>은 영화 내내 깔리는 박태수의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일이 터지고, 해내고, 성공하는 모습들만 나열한다. 생각해보면 그저 인터넷 항간에서 나도는 검찰 음모론을 보기 좋게 구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이 영화는 비로소 커다란 갈등을 맞이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그 결말이야말로 <더 킹>의 가장 핵심이자 막을 내리는 포인트이다. 극 중 안희연 검사가 설명하며 넘어가는 슬라이드쇼처럼 <더 킹>은 검사들의 투쟁을 나열하듯 보여주며 거기에 설명을 덧붙인 후 그럴싸한 메시지를 남긴 셈이다.
짚어보면 <더 킹>은 (이 영화를 생각하면 연상될 수밖에 없는) <내부자들>보다는 훨씬 정당한 구도를 취한다. <내부자들>이 성(姓)을 중심으로 보수 진영을 추악하게, 반대로 두 주인공에겐 별개의 것으로 전혀 동떨어진듯 극단적으로 대비한 것에 비해 <더 킹>은 아예 한 진영만을 내세워 현시대를 비판하니까. 하지만 박태수가 결정적으로 한강식의 '라인'을 타게 되는 이유, 그가 그 라인에서 나가떨어지게 되는 원인을 생각하면 결국 성의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권력과 성이 유착된 게 현실이긴 하지만 내심 아쉬운 지점이다.
다소 아쉬웠던 건 후반부의 음악 사용.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딱 들어도 다른 영화에서 사용됐던 음악 두 곡을 연이어 사용하는데, 사실 그 활용도가 마땅히 좋지 않다. 다른 두 영화에서 이미지와 부합되며 완벽한 용도가 보였기 때문에 <더 킹>에서의 활용은 다소 의아하다. 물론 다른 작품들을 연상하지 못한다면 크게 단점이라 할 순 없다.
물론 언급했듯 <더 킹>은 재밌다. 지적한 단점이 장점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좋은 시너지를 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더 킹>의 단점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메시지의 강력함 때문이다. 시국과 맞아떨어지는 풍자뿐만 아니라 (제목에서 시작되는) 이 핵심 포인트는 <더 킹>의 부실함을 잊게 만들기 충분하다. 정말 명확하고 분명하게 옳다고 판단되는 분위기가 이 작품을 지나치게 신격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