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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l 25. 2021

내가 한 건 사랑은 아니었다

걸음마부터 다시 떼기

이 글을 쓰기 위해 먼저 할 말이 있는데, 그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려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엔 내 생각들을 공개된 플랫폼에 기재해 하나의 기억 클라우드를 만들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조금 목적을 구체화시켜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꼭꼭 씹어 천천히 소화시키면서 그때의 내 행동, 내 기분, 상대의 그것들을 돌아보고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이전 관계들에 대해 많이 쓰게 된다. 특히 오랜 친구들에게 배운 점, 스쳐 지나간 줄만 알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머물러 변화된 내 모습들에 대해 쓰고 있다. 오늘은 앞으로 건강한 사랑을 하기 위해 내 연애에 대해 써보고 싶다.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연애 횟수가 사랑의 능력치를 나타내는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러 번 사귀어 봤어도 그 안에서 상대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다른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로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건 이제는 다시 못 볼 상대에게 내 인생의 시간을 썼던 기간일 뿐이라 생각한다. 결혼 전에 많이 만나봐, 한 사람 오래 사귀어서 뭐 할 거냐라는 말로 다들 결혼 전에 사람을 많이 만나고 경험을 해보라고 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을 사귀어 보면 연애적 스킬이 뛰어나 져서 상대를 밀당으로 구워삶거나 알게 모르게 상처가 쌓여 마음을 온전히 열고 사랑하기 더 어려울 뿐인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장기 연애를 해보고 싶다.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해 사람을 만나보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오래 만나면서 결혼 생활에 필요한 이해심, 참을성, 배려, 한 사람과 오래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우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 않은 관계는 그저 잠깐이면 사라질 외로움이나 성적 쾌락을 위해 육체적 관계가 가능한 기간제 베스트 프렌드를 만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정신적으로 남는 것도 없고 텅 빈 추억만 남아 나중엔 비슷한 패턴만 반복하는 그런 경험을 번복하며 인생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 글을 써본다.




강연 대표 이미지

사랑에 대해 써보고자 한 계기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 중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이라는 강연을 보고 느낀 게 많기 때문이다. 이 강연에서 중점이 되는 키워드는 좋은 관계, 오래 유지이다. 나는 이전의 연애는 내가 폭발하도록 상대가 내 발화점을 점점 올려주어서 어쩔 수 없이 폭발했고 그렇게 헤어졌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폭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렇게 만든 상대의 잘못으로만 우리 관계가 파탄 났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젠 아이처럼 행동하기엔 조금 곤란한 나이의 남자가, 경험도 많을 거면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 보면 분명 가볍게 여기거나 원래 저렇구나라는, 어떤 길로 가도 절망적인 결론만 나오는 관계에서 괴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강연을 보면서 느꼈던 건, 나도 그도 연애를 벗어나 사랑에 있어서는 똑같은 초보라는 것이었다.


강연 시작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구나 연애는 할 수 있지만 사랑은 불가능하다."


사람을 책에 비유해 우리의 연애를 말한다. 책을 살 때, 표지가 이쁘거나 목차가 마음에 들어 사게 된다. 그렇게 연애도 시작된다. 이후 둘은 사랑을 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기 이전에 헤어진다. 책 표지가 이뻐서 샀지만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피곤하니까, 내일은 바쁘니까 하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알아보지 않는 것이다. 겉으로만 남들 하듯 행복해 보이고 두근거리는 연애놀이만 한다.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데이트를 반복하고 변주를 주며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볼 생각도 없이 권태만 쌓인다. 여기서 문제는 오래 가지고만 있었을 뿐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그 내용을 다 안다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알지도 못한 채 다 알고 있다 생각하고, 그 사람을 단정 짓고 헤어지게 된다. 이런 연애가 아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 하나씩 내 이야기를 대입해 나는 어땠는지 돌아보려 한다. 




개별성 존중하기

가까워짐에도 여전히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독립성을 유지하면 사랑이 오래간다고 한다. 이 조건의 전제는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이들은 다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을 만나며 그들의 다름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틀렸다 오해하고,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나는 딱히 어떠한 사람이라기 보단 웬만하면 다 받아주는 데에 스트레스 없고 오면 오고 가면 가라는 스타일이라 상대에 잘 맞춰지는 편이다. 상대는 자신이 개인주의인 것에 대해 고백한 적이 있다. 이전에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 안 하고 두 번의 헤어짐 이후 만남에서 말하더라. 그래서 그 이전엔 진짜 그 사람에 대한 개별성을 몰라 오해가 많았는데 들은 이후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도 행동을 잘하려 했고 나도 혼자 곡해하는 일이 없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이해하진 못했다. 어떤 행동을 해도 개인주의이고 어쩔 수 없다는 그의 말이 맴돌아 뭐든지 정당화되고 불만을 가지는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원하는 걸 이야기하기

내 연애가 틀어지게 된 이유는, 소통의 일방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자주 나에게 물었다. 오늘 먹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내가 되물으면 그는 원하는 게 없었다. 매일 대답은 똑같다. "몰라" 또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하자" 처음엔 이게 배려인가 싶기도 하고 별 상관도 없었다. 어차피 자기가 싫어하는 메뉴를 말하면 어느 정도 오늘 먹을 게 좁혀지니까. 그런데 이 작은 게 쌓이니 나중엔 연애 자체에 불만족이었다. 나랑 하고 싶은 게 없나, 생각이 없는 건가, 원하는 게 어떻게 없지 하고 말이다. 나는 자주 말한다. 오빠가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거나, 내가 이런 게 속상한데 안 그러면 안 되느냐. 그리고 항상 물었다. 오빠는 내가 고쳤으면 하는 거나 해줬으면 하는 거 없어? 그 사람은 원하는 게 없었다. 그러니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이야기 못했다. 나를 더 소중히 대해주면 좋겠다, 보고 싶다는 말만 하지 말고 한 번은 진짜 보자고 하면 좋겠다, 꽃을 보고 내 생각이 났다는 말만 하지 말고 진짜 꽃 한 송이 받고 싶다. 그걸 손에 꼭 쥐고 데이트하고 싶다. 하지만 나만 말할 수 없으니 입을 다물게 되었다.



갈등에 잘 대처하기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는 사람들은 갈등은 사랑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요소로 본다고 한다. 갈등 자체를 위험 요소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를 잘 넘기면 그 이후로 관계가 더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부분에서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못했다. 항상 웃으며 원하는 게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나만 불만을 계속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사소한 건 넘기고 넘기다 생리 전에 감정이 증폭되어 폭발한다. 그럼 그는 처음엔 이겨먹으려는 듯 방어적으로 군다. 그 이후엔 미안하다, 고치겠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함께 할 게 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이 갈등을 마치기 위한 사과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걸 원한 게 아니었지만, 이 갈등에서 얼른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그 목소리에 나도 그냥 넘기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러 갈등 상황을 지속시켜 자꾸만 뭔가 생각하게 하고 도출하려 하면 나는 또 헤어지자는 말을 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나도 갈등이 무서웠다. 연장자이자 경험자가 날 이끌어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자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결국 갈등 해결 초짜였고 거기에 나도 동조했을 뿐이다.



상대방의 행복과 이상에 관심 갖기

이 조건을 잘 지키면 '우리'가 커진다고 한다. 그럼 너와 나 개별 존재들은 작아지는가. 아니다. 너와 내가 각자 발전하고 커져서 붙어있는 우리가 자연스레 커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너와 나는 서로의 이상과 발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너는 좋아하는 게 뭐니,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니, 나중엔 어떤 일을 하고 싶니, 넌 내가 어떻게 할 때 사랑받는다 느끼니? 정말 넓은 분야에서 서로와 우리의 발전과 행복을 위한 물음이 이어져야 한다. 너는 싫어하는 게 뭐야, 내가 어떻게 할 때 불 펴하니라는 물음을 해서 상대가 싫은 것을 하지 않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처음엔 말했다. 내가 다이어트 걱정을 하니, 같이 헬스장에 다녀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내가 아프자 병원 같이 가자고 걱정스러운 말도 했다. 결국 행동으로 옮기는 건 하나도 안 했지만. 그 당시 다정하게 묻기만 할 뿐 진심으로 내 발전이나 행복을 바란 건 아니라 생각한다. 나중엔 이렇게 말했다. 같이 게임할래? 근데 내가 게임하면 너 연락 못 받을지도 몰라. 같이 헬스장 갈래? 근데 내가 운동하면 너 신경 못 쓸지도 몰라. 걸그룹 이야기를 그만 하면 좋겠다는 말에도 끝까지 장난치듯 이야기를 더 해서 서운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화나진 않았고 그냥 저 나이 먹고 왜 맨날 장난식인가 싶었다. 내가 결국 터지면 그때서야 데이트 제대로 못해서 미안, 이번 주말에 어디 가볼까? 오늘 하자고 한 거 하나도 못했네, 다음 주에 꼭 같이 보러 가자. 이런 류는 진짜 행동하긴 했지만 온 얼굴에 피곤함을 가득 티 내고 이 또한 일회성일 뿐이었다. 그다음 내 기분이 풀리면 다시 되돌아온다. 알고 있으면서 안 하는 걸 아니 뭐라 할 말은 없다.




이렇게 적으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 사람만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누구의 잘못도 없다. 그냥 사랑 없는 연애 놀음이었으니 진심이 나올 리 없던 것일 뿐이다. 아님 진짜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연애할 기회만 많아져서 연애 시작만 잘하는 사람이던가. 가벼우니 서로의 발전을 위해 한 행동도 당연히 없었다. 그는 장난식으로만 굴었고 나는 그걸 보고 더 상처 받기 싫어 나는 원래 꽃 받는 거 싫어, 오글거리는 거 싫어라고 되뇌었을 뿐이다. 결국은 시간, 돈, 감정, 체력 낭비만 한 텅텅 빈 커플이었을 뿐이고 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강연에 나온 조건들에 부합했던 경험들을 적어보니 든 생각은, 저런 조건 다 상관없이 결국 어떤 관계이든 진심이 사랑이고, 사랑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니 행동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럼 자연스레 상대는 상처를 받고 불만을 표한다. 그럼 한 명의 불만이 이젠 둘의 불만이 되고 결국엔 이 연애를 하고 있는 자체에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우리 관계를 회복할 생각은 전혀 못한다. 그저 이걸 언제 끝낼지만 생각한다. 그냥 그런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적은 진짜 이유는 다음 사람을 위해 사랑에 대해 알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받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별하고 나니 내 인생 마지막 사람일 것만 같은 특별한 사람이 결국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서 잠시 나만의 사람이 되었기에 한없이 인정 어린 눈으로 보아 사랑스러웠을 뿐이다. 그 사람이 제일 잘생겨 보이고, 그 사람이 제일 특별한 것만 같아도 겨우 몇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그도 나도 삐뚤빼뚤한 보통사람일 뿐이다. 시야가 넓어지니 새롭게 호감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인식하며 내 것이었던 존재의 감각은 점점 사라진다. 너무 가까우면 그 사람의 단면만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걸 특별하게 여긴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 사람을 보는 일은 없으니까. 강연 마지막에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사랑도 예외 없이 모든 장기전은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배워야 하고, 훈련하고 연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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