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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Aug 14. 2021

본능적으로 느껴졌어

방구석에 곧 처박힐 거라는 걸

 평온한 상태에서 글이 잘 안 써지지만 감성이 차오를 땐 내 곁에 있는 하찮은 물건만 봐도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도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늘은 (안 쓰지만) 멋있는 DSLR과 15년도 입시 시정부터 쓰던 전동 연필깎이를 보며 실용성이 있다고 그 물건이 소중해지는지 생각해봤다.

 

 구매를 결정할 때 난 꽂히는 게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을 하는 편이다. 이성적이기보단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편에 가까운 것 같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서 분석을 해봤자 끌리는 건 다른 영역인 것 같다. 그래서 내 방엔 특이한 물건들이 많다. 특이한 컬러감에 꽂혀서 산 워커지만 잘 신지 않는다던가, 캐릭터가 귀여워서 샀지만 금방 질리는 인형이라던가. 실용성은 없다. 그래도 그 물건들은 이쁘니까, 특이하니까 아무 쓸모없어도 존재 자체로 실용성이 생기는 물건이 되어 내 방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해둔다.


 그러고 보면 확 꽂히지 않았지만 필요한 이유가 분명해서 샀던 물건들은 의식하지 않은 채 꽤 오래 함부로 쓴 듯하다. 존재감도 없고 애착도 없어서 집 안에서 한 번씩 잃어버리기도 하는 물건들이다. 오래된 머리 고무줄이나 어쩌다 자막을 봐야 할 때 필요한 3년 넘은 안경이 그렇다. 아, 손그림 그릴 때 필요한 자동 연필깎이도. 이 물건들은 뽀대 나거나 고유의 특이점이 있는 물건들은 아니다. 정말 실용성을 위한 물건이라 조금 막 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내 곁에서 내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중요한 물건들이다. 그런데 별로 끌리는 매력적인 물건은 아니니 방에 잘 팽개쳐 놓는다. 


 그래서 잠시 잃어버리기도 하고 찾지 못하면 아깝지만 비슷한 물건을 산다. 그런데 신기한 게 꼭 그 물건이 아니어도 되는 순간, 그러니까 더 성능 좋고 기능이 같지만 새것인 물건을 사는 순간, 내 꼬질한 물건을 다시 찾게 되는데 그럼 그때부턴 다시 그걸 계속 쓰기 시작한다. 오래 써서 내 손에 익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 물건들이 한 번씩 없어져서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는 건가 하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그 물건을 소중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그 물건은 필요가 없어지면 다시 방구석에 처박힌다. 필요하지만 중요하진 않았다.



그런데, 

적어도 난 그런 사람이 되기 싫다.


누군가의 곁에 맴돌며 입안의 혀처럼 온갖 기분 좋은 말을 하며 홀리게 할 자신은 없다. 

화려한 외모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존재감도 없다.

나만의 매력으로 확 꽂히게 만들어 사람 돌아버릴 정도로 두근거리게 할 자신도 없다.


그렇지만, 

잃고 나서야 허전한 마음이 드는, 떠난 빈자리로 나라는 사람이 네 곁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는 걸 말하는, 그 정도의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없고 허전하면 뭐하나

내 마음이 낡고 헤져서 구실을 못하게 된 이후에 보듬어주면 뭐하나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허전하긴 해도 결코 소중하지 않았단 걸 안다.

네가 필요해졌다며 날 다시 찾아도

결국 처음부터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적당한 존재가 갑자기 특별함으로 뒤바뀌는 기적은 없다.


결국 잔머리가 거슬릴 때만 생각나는 낡은 머리끈이다.


내게 단점이 있어도 감싸주면 좋겠다.

내가 신이 나 조잘대면 같이 신나서 들어주고

내가 우울해서 쏟아내면 같이 울어주면 좋겠다.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 놀리지 말고 같이 바보짓을 하고

가만히 있어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내 마음이 어떨까 노심초사하면 더 좋겠다.


소중히 대해 지지 않는다는 감정을 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에겐 그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마음껏 말해주고 싶다.

불안해하면 내 마음을 마음껏 알려주고

날 아끼듯 나도 아껴주고 싶다.


원치 않게 태어났으니 적어도 한 명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욕심이 아니니까.

나는 그래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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