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병을 대하는 자세
코로나19가 유행을 하면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 건물 입구에는 손 소독제가 비치되는 풍경이 제법 익숙해졌다. 과거 독감이 유행했을 때도, 사스나 메르스 당시에도 없던 일이었다. 아무리 건강에 자신 있어도 타인이 나를 감염시켜서 병이 생긴다는 공포는 몸을 자연스럽게 움츠리게 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다. 취업을 하고 4년쯤, 토요일에 사회복지의 날 행사를 마치고 몸살인지 한기가 들었다. 식은땀이 나서 결국에는 진통제를 먹고도 해결이 나지 않아서 출근도 병원으로 했다. 가을철 유행하는 쯔쯔가무시병이라는 의심으로 팬티만 남기고 온몸을 뒤져서 물린 자국을 찾았지만, 몸에 모르던 점만 찾았다. 결국, 남원에서 제일 큰 병원 내과로 갔다. 진료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내내 고열과 두통으로 앉은 자세를 유지하기도 힘들었지만, 진료는 5분도 안 걸렸다. 결론은 일단 입원이었다.
혹시 몰라서 트렁크에 챙겨둔 입원 용품을 들고서 병실로 갔다. 5인실에서 커튼을 치고 온몸을 뒤지는데, 물린 자국이 없다. 나도 쯔쯔가무시병이라고 믿고, 아마 대부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의외의 병명이 나왔다.
“수두 같은데?”
차트가 바뀌었나 했다. 수두는 어린애들이나 걸리는 병인데, 나이 35살이 5인실에서 듣자니 부끄럽다. 학교 다닐 적에 수두에 걸린 학생이 있으면 전교생에 소문이 나고 한동안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정말 어릴 적 기억이라서 친구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병에 걸린 당사자가 되어보니 주변에 어찌 말할까 난감했다.
말하기도 곤란한 상황임은 틀림없지만, 더 난감한 것은 그 병이 전염병이라는 것이다. 혼자 링거를 맞은 상태로 급하게 1인실로 짐을 옮겼다. 혼자 입원한 상태라서 누가 날 도와줄 사람도 없이 입원실을 옮긴 상태로 마스크와 비닐 옷을 입은 간호사가 체온과 혈압을 검사했다. 그 상태로 아무도 부르지 못했다. 사실은 면회 올 사람도 없었다.
회사 상사와 동료가 상태 파악을 위해서 병실 입구에서 간단하게 인사만 했을 뿐이고, 3주간 병실에서 혼자 눕다, 앉았다가 병실을 뱅뱅 돌았다. 고열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에서 좋아하는 책도 못 읽었다. 손가락에도 물집이 올라와서 펜을 잡을 수 없는 손으로는 상황을 기록하기도 힘들었다. 그저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다가 1인실 안에서 사육되는 기분이었다. 씻는 것도 포기한 채로 화장하듯 수포가 흉이 나지 않게 바르는 약을 발랐다. 분홍 분칠을 하는 것처럼 덕지덕지 바른 얼굴은 흉물스러워서 거울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 딱지가 하얀 시트에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람이 되었다. 2주가 넘어서야 면도를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만큼 병실은 외딴섬이었다. 퇴원하고는 3주 동안 밀린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놀림을 당하더라도 학교를 나가고 싶은 초등학생이 된 마음이었다.
요즘 코로나19를 보면 당시가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불안에 타인을 멀리하고, 스스로도 움츠린 상태로 홀로 아픈 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그립고, 미운 사람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당시에 나는 생각이 많은 오춘기가 왔을 시절이었고, 사람과의 대화가 참 싫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정말 외롭게 지내보니 사람이 그리웠다. 전염병에 무서운 것은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병에 대한 공포와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외로움이 가장 큰 고통이다. 코로나19를 생각하며, 어른이 되기 위해서 아팠던 수두를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은 답답한 지금의 일상생활을 참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