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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잔에 마실 때는 혼자가 아니다

옆자리 사람들에게 잔을 빌리다

by 이춘노


사실 나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왕에 술을 마실 거라면 독주가 좋다. 파란 병에 소주여도 좋고, 붉은빛이 감도는 홍주도 좋다. 아니면 맑고 투명한 고량주나 비싸지만 향이 좋은 양주는 더 반갑다.

여러 가지 술을 마셨지만, 유독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어쩐지 혼자 마시기엔 부담스럽게 배도 부르고, 취하지도 않기에 냉장고를 채울 공간이라면 파랗고, 붉은 계열의 술만 채웠다.


그러던 나도 입사하고는 맥주를 마셨다. 그건 아마도 혼자가 아녔기에 가능했던 음주였다. 나에게 있어서 맥주는 누군가와 마시는 이음주였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고 듣고 믿고 살았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에 제일 순간에 함께 있어준 옆자리 사람을 지켜본다.

입사를 하고, 내가 일을 처리하는 순간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바로 함께 일을 해주는 동료였다. 나는 손이 더디다. 게다가 꼼꼼한 성격에 일을 진행하는 마음가짐은 강하지만 결과물은 남들보다 약하다. 어찌 보면 사회 부적응자로 보일 행동을 할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를 의지하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시기마다 술잔이 나에게 왔다.

맥주는 힘든 시기마다 찾아오는 주류였고, 캔보다는 잔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빌린 잔으로 맥주를 함께 마시다 보면 시간이 흘러서 적응이 되었다.


최근에 나는 여기저기 폭탄발언으로 시끄러운 존재가 되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보니 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근심을 털고 함께 하자며 술잔을 서로 주는데 내가 피하는 상황이랄까.

그리고 가장 지근거리에 어떤 분이 보내준 카톡 문구를 곱씹어 본다.


주말 동안 참 여러 번 문구를 들여다보며, 과거에도 들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단순히 지금의 고통보단 미래의 자신을 생각해보라는 충고를 듣던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밤. 술을 마시다. 내 냉장고에는 맥주도 어울리는 잔도 없음을 알고 과거의 맛있던 맥주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힘들 때 선뜻 내어준 그 수많은 잔의 온기도 기억해본다.


어쩌면 나는 맥주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못 마시고 있던 것은 아닐지. 그렇게 날이 추운 새벽에 나와 잔을 나누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도 미안함도 소주잔에 담아본다. 그리고 지금은 소주를 마시지만 다음에는 누군가와 맥주를 마시고 싶다. 좋은 안주 두어 개 시켜놓고 즐겁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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