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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도 수제비는 먹고 싶어

아플 때 제일 먹고 싶은 음식

by 이춘노

2017년 여름부터 몸이 아팠다. 사실 그보다는 마음이 더 아팠다.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었던 나는 2020년에는 휴직을 했고, 다음 해 복직을 했다. 그래도 작년은 하루하루를 덤으로 생각하며 지냈다. 욕심도 없었다. 그냥 휴직하면서 늘어난 마이너스 통장을 “0”으로 만드는 것만 생각했다. 그리고 더불어서 식욕도 딱히 생기지 않았다. 마치 아무 여흥도 없는 덤덤한 사람처럼.

복직하고 근무지 특성상, 코로나라는 상황 때문에 차를 타고 나가는 점심 식사는 자제했다. 아마 동료들은 좀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직장인에게 점심은 어떤 숙제 같다. 매일 먹는 식당은 한 달이 지나면 물렸다. 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사나 동료와 식사를 하면서 메뉴도 고르기 어렵다. 그래서 직장인의 영원한 과제와 같은 식사를 난 햇반과 고추 참치와 김으로 작년을 버텼다. 별난 식단이라고 주변에서 걱정했지만 10분이면 식사를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의 혼자만의 여유는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다. 그만큼 나에게 식사는 별 것 아니었다. 여차하면 한 끼 정도는 우습게 굶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찾는 음식은 있다. 심장이 쪼여오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주말 점심은 어김없이 그곳을 향했다. 그래 내가 제일 아플 때 꼭 먹어야 하는 음식 수제비다. 그런데 이 작은 소도시에는 마땅한 수제비집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딜 가든 국수집이나 칼국수 집은 있는데, 어쩐지 수제비집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간혹 시장통에서 할머니들이 운영하시는 칼국수집에는 투박하지만, 양이 많은 장소도 종종 있지만, 좀 얼큰하지 못하다. 왜 이렇게 수제비집이 없을까? 내가 보이게는 일일이 손으로 반죽을 떼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문제가 아닐지. 한마디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내 수제비 사랑은 그런 번거로움을 잊고 나를 챙긴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손자에게 점심으로 먹이기 위해 거친 손으로 반죽하시던 할머니. 평상시에는 평범한 밥을 해주시다가 비가 오는 날에는 식용유향 가득한 파전이나 양푼 가득한 수제비를 한가득 담아주시던 걸 먹었다. 단순히 멸칫국물에 밀가루 덩어리랑 애호박 하나 들어갔을 뿐인데, 어린 나는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리고 유독 아플 때는 신기하게 입맛이 없어도 죽보단 수제비가 더 잘 맞았다.

그렇게 아프면 조건반사적으로 먹던 수제비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잊고 살았다. 거의 10년을 먹지 않다가 취업 준비로 노량진에서 공부하면서 다시금 먹기 시작했다. 오천 원으로 푸짐하게 먹던 수제비는 칼국수랑 섞인 칼제비라는 형태로도 유명해서 멀리서도 찾아오는 맛집이었다. 노량진 시장 골목 어느 지하상가에 있었지만, 사람들로 항상 가득했다.

참 긴 시간을 노량진에 살았다. 시험도 떨어지고,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하면서도 그리고 사회복지를 시작하면서 고향을 내려가는 순간까지 아프거나 힘들면 할머니가 해주시는 수제비가 생각나는 그곳은 위안을 주었다.

종종 생각났다. 고향에 왔지만, 잊지 못해서 가끔 서울을 갔다. 주인아주머니도 날 기억하고 양을 가득 담아주시던 서비스도 여전했는데, 내가 아프기 시작한 몇 해 전에 문을 닫았다. 할머니도 안 계시고, 단골을 잊지 않는 사장님의 서비스도 그리웠다. 그렇게 인근 지역 수제비 맛집을 찾아다녔다. 곡성이며 구례며 힘들 때면 구례의 유명한 다슬기 수제비집도 가고, 곡성 시장에도 갔다. 아니면 섬진강 유역에 참게 수제비도 맛보았다.

그래도 그나마 가까운 곳을 찾았지만, 차로 10분은 가야 했다. 그렇게 가기 시작한 게 벌써 3년째이다. 얼큰 해물 수제비를 먹기 위해서 오늘 주말도 11시 반 정도에 들어갔다. 너무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서 가는 독특한 혼밥 손님. 일정한 주문에 오늘은 아예 “그거 드러요?”하며 사장님이 물었다. 그렇게 자동 주문된 음식을 먹었다. 투박하지만 쫀득한 수제비와 해물이 가득한 시원한 국물. 먹고 나니 땀이 나서 여러 번 화장지를 찾았다. 참 만족스럽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힘들면 생각나는 음식은 여럿 있겠지만, 수제비를 먹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딱히 배고파서 먹는 요리와 다른 이 맛이 나는 이유는 추억이나 외로움을 달래고자 하는 무슨 의식 아닐지? 그것도 아주 맹목적인 짝사랑 같았다. 아마도 내가 수제비를 먹는다고 좀 더 건강해지거나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새해에 떡국을 두 그릇 먹는다고 나이가 더 생기는 것이 아니듯이. 그렇지만 의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라도 추억과 사랑을 느끼고 싶다는 소망이 수제비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독거남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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