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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에 진심인 남자

사실 난 그렇지는 않은데 그리 되었다.

by 이춘노

91kg

2020년 1월에 내 몸무게이다.


동기가 과거의 내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같이 비교해서 올린 사진을 보고도 당시에 내가 멀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스스로가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는 것은 강박적 습관을 가진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그래서 기계적으로 내가 먹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두는 버릇이 생겼다. 타인이 뭐라고 이야기하더라도 면장님이 동석한 자리에서도 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아마 그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무슨 블로그를 운영하는지 알고 있지만, 단순히 혼자 먹는 것도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사람이란 과거를 망각을 하고 잘 잊고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더라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책을 읽어도 페이스북에 그 기록을 남겼다. 그러다 문뜩 내가 먹을 것도 기록을 남기면 어떨지?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의 안식처인 고양이도 못 보는 마당에 먹는 사진이라도 맘껏 올리자는 마음으로 찍어둔 사진 중에서 매콤한 비빔면을 첫 장으로 올린다.


91kg이었던 시절에 나는 주로 치킨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지리산에 있을 때는 그냥 컵라면을 주로 먹었고, 차를 타고 30분을 왕복하는 곳을 가더라도 포장된 치킨에 홍주 한 병을 마시고 잠을 자던 혼술남이기도 했다. 그렇게 먹다 보니 1년 반 만에 6kg이 찌더니 위험 수위까지 오른 것이다.

아마도 비빔면도 먹고는 싶지만 귀찮아서 컵라면으로 대충 먹었을 것이다. 그냥 불을 쓰는 것보다는 전기로 대충 사는 것이 독거남에게는 편한 일이었다.

그런데 휴직을 하면서 조금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어차피 먹는 거라면 조금 다르게 먹어보자. 먹고 싶은 것이라면 좀 맛있게 먹어보자. 인생에도 귀찮은 짓을 한번 해보자.

그 시도를 구체적으로 해본 것이 비빔면이었을 것이다. 마트에서 여름만 되면 비빔면을 전면에 배치한다. 여름엔 역시나 비빔면이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뭘 먹든 하나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두 봉지에 면을 삶고, 찬물에 면을 찰지게 하고는 물끼를 탈탈 털어낸다. 아마 그 정도는 보통 다 해봤겠지만, 난 독거남의 사심을 담아 골뱅이를 넣어 봤다. 번거롭지만, 맛은 보장되었다. 비주얼이 좋다는 것은 술도 마신다는 다른 말이었다.


만족스러운 비빔면을 먹으며 소주 한 잔을 마셔본다. 이미 맛은 익숙하고, 보장된 상태에서 내 기호대로 변화시킨 안주에 먹을 것에 진심이 되어버린 나를 생각해봤다.


사실 나한테 남은 것은 이거뿐이었다. 20대나 30대에는 이보다 못한 컵라면 하나에도 행복했다. 이른바 천 원의 행복을 누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남은 나의 저녁과 주말은 식당보다 비싼 배달과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러다 마흔이 다되어서 먹는 것에 진심을 담았다. 완성된 비빔면에 참깨를 뿌리는 세심함으로 귀차니즘에 방점을 찍었다.

이렇게 별것 아닌 나의 취미를 조금씩 올려보려고 한다. 나도 그렇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귀찮은 일도 하지 않아서 배달앱을 검색하는 독거인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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