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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an 15. 2022

나의 소원은

물 흘러가는 대로 살자

  학창 시절에 백범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접하고, 소원이라는 것에는 큰 염원을 담는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소원은 대의를 위한 소망이었다면, 나는 그 정도로 큰 그릇은 아니다. 그렇지만 소박하게 내 소원을 노트에 적어 보았다.     


  열심히 하루를 살다가 내일은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근까지 내가 이러한 소원을 담을 수 있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난 5년 동안 고통 속에서 짜낸 중간 답이다. 내가 유명한 철학자가 아니며, 그렇다고 인생의 성공한 사람도 아니기에 그냥 흘려버릴 수 있는 말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 정도의 답을 내는 것으로도 만족한다. 아마도 만족이라는 단어가 해결이라는 단어와 차이가 있기에 다행이었다. 덕분에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으니까.   

  

  아이러니.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이번 주를 생각하면 아이러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인사가 났고, 힘든 와중에 많은 인사 시즌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담담했던 적이 없었다. 지리산 근처도 가봤고, 다시 내려와서 휴직도 감행했다. 그리고 복직까지 거치면서 단련되었다고 하기에는 이토록 담담하기는 처음이다. 솔직히 나답지 않다. 


  나는 내가 망가졌던 곳으로 돌아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당시는 30대이고, 지금은 40대라는 점이다. 그 외에는 정말 비슷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이다. 내가 전에 인수인계를 해줬던 사람에게 다시금 비슷한 말을 해주면서 지금 있던 자리를 정리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1년의 경험을 털어줬다. 사람들은 성실하다고 칭찬도 했지만, 사실은 내 소원이 내일의 내가 없는 것이기에 열심히 했다.     

 

  떠나는 사람은 즐겁게 가야 한다. 울고, 서운해하면 뒷맛이 찜찜하다.     


  인사가 나고 이틀간 인수인계를 해주면서,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내가 간다는 것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즐겁고 반갑게 이야기했으니, 좋은 곳으로 가는가 보다 싶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는 그 정도의 기억만 남기고 가면 되는 것이니까. 최대한 밝게 웃었다. 인수인계도 힘 있게 아는 것을 다 쏟아 내면서 강사처럼 떠벌렸다. 한두 달은 손을 떨며 당황하는 순간을 메모했던 것을 몇 시간 동안 노하우를 전수하고는 퇴근했다.      

  사실 상황은 얼굴만큼 밝지는 못했다. 5년간 끌었던 고통의 시작점이 된 곳이다. 잘하지 못해서 뛰쳐나오듯 지리산으로 갔던 나였다. 당시에는 순간순간 죽고 싶었고, 나중에는 아무 삶의 의지도 없었고, 휴직할 무렵에는 모든 것이 분노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오랜 상담과 개인적 노력으로 지금의 내가 유지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인가? 아마 해결이라는 단어가 중점이었다면, 난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그냥 만족의 선을 낮추고 있다. 나이를 먹어서, 체력이 전처럼 되지 못해서, 능력을 실감하면서 다들 만족 선을 낮춘다. 그게 인생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오늘 너무 부지런했다. 묵었던 방 청소도 했고, 이불도 빨고, 부모님도 뵙고, 쓰레기 정리도 했다. 그리고 이 추위에 세차도 하고는 낮잠을 잠시 청하고 글을 쓴다.      


  나의 글은 덤덤하지만, 매일매일 쓰는 유서이다.     


  내일을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남자라고 해서,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면서 나를 버리는 짓을 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글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하고, 남에게 그 내용을 공유하면서 생긴 마음가짐 같다. 이렇기에 덤덤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 떨리고, 무섭고, 고통스러워도 현실에서는 웃으며 연기하더라도 글에서만이라도 솔직할 수 있다면 만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그나마 날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지? 잠시 생각하고 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 소원 들어 주실 거죠?     


  이런 나의 하루에 문자가 왔다. ‘고객님의 세탁물이 정상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내일은 소원 여부를 떠나서 일요일이라 못 찾을 테니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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