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책을 느끼고자 왔다. 단순히 나는 읽고 있는 책이 태어난 고향에 가고 싶었다. 익숙한 이름의 출판사 사옥을 보면서, 글쟁이의 꿈을 꾸기 위해서 스스로 멀리 있는 길을 찾아갔다.
솔직히 멀긴 멀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다시금 전철을 타고, 파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와보니 많은 책이 벽을 가득 채웠다. 참 책이 살기 좋은 곳. 아마 이런 온도와 습도와 공간이라면 사람도 살기 좋은 환경일 것이다. 그리고 막연하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마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 인간이 만들고 누릴 수 있는 최고 사치의 공간은 도서관이 아닐지. 지식, 사랑, 분노, 쾌락, 연민, 우울, 취미 등. 인간의 모든 것을 담은 이곳이야말로 인간 자체의 숲이 아닐까.
역시나 출판사마다 정갈하게 정리된 여러 공간은 출판사의 개성이 넘쳤다. 마흔이 되었지만, 아직도 꿈을 모르는 방랑자에게 종이 향기를 선사하는 이곳은 이른바 글쟁이에게는 가장 행복한 낭만을 주는 공간일 것이다. 그렇게 단언하면서도 난 이곳에 어느 한구석에 벽을 차지하는 책조차 읽지 못했다. 얕은 지식으로 글을 써오던 자신을 반성하면서도 슬쩍 스치듯 느껴지는 책의 다양한 질감도 짜릿하다.
부끄럽지만, 나도 비매품의 책을 써봤다. 우연한 기회에 정말 나만의 책을 만들어 보긴 했지만, 학교 문예지 수준의 책으로는 책을 썼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그래도 한 권 한 권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짐작을 하기에 경외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창작의 고통과 출판인들의 노력이 모여 이룬 거대한 숲이다.
인터넷과 온라인으로 책을 보는 시대에 아직도 종이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상한 것일까? 세대와 나이를 떠나서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는 스르륵 넘어가지만, 고민하며 밑줄 치고, 메모하는 습관은 쉽게 포기 못 하겠다. 너무 쉽게 넘기는 책장이 아니라 정말 무겁게 생각하고 넘기는 책장이 덮는 순간에 오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난 그래서 종이 책이 좋다. 그래서 더 이곳에 오고 싶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 숲에 나의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을까?
글 쓰는 사람의 무한한 꿈이자, 돈 안 되는 일이라도 하고 싶은 일. 자기 책을 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책이 서점에서 진열되어서 독자가 골라 읽고 또 그렇게 묵직하게 책장을 넘기고 뭔가 남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은 행복일 것이다.
난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
진정 저 숲에 나무를 심고 싶다. 그래서 뿌리가 깊은 그 나무가 남아서 곧게 자란 그 나무에 내 이름을 써두고 싶다. 이건 내가 심은 그런 나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