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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y 13. 2023

처음 보는 사람이 고기를 구워줬다

연합 회식을 하다 보면 생기는 행동들

  "오늘은 화합 행사로 0000과와 함께 식사합니다."


  분명 서무 직원이 이야기를 했는데, 난 시간과 장소만 봤다. 그리고 일이 끝나기 무섭게 달렸는데, 도착해 보니 본청 주변 식당이라서 이미 다른 과 직원들 틈에 자리를 앉아야 했다. 들어온 순서대로 앉다 보니 같은 면사무소 직원들은 반대 테이블에서 이미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반쯤 찬 테이블에서 나와 우리 면 다른 남자 직원이 와서 완전체가 된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보통 이렇게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의 식사는 거부한다. 서로 소속이 다른 부서의 남자 4명이 앉은 상태에서는 통성명이나 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딱 봐도 이미 난 나이 많은 꼰대 직원이었다. 바로 같은 과 직원들이 옆 테이블을 채웠는데, 입사를 같이 한 형이 테이블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보는 동기 형님도 어색한데, 모르는 남자의 집게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어딘가 놀러 가는 장소에서 무작위로 앉게 되는 경우나 소개팅을 갔을 경우에 묘한 긴장감. 별로 대화할 것이 없던 터에 집게남이 내가 같이 일하던 직원 동기인 것을 알고 좀 아는 척을 했다. 사실 한참 후배라서 오히려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그래도 그 이름이 참 반가웠던 것은 대화의 물고를 터주는 귀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또 옆자리의 고기 진심남들이 모인 불판에 화려한 고기 굽기 모습에 한 잔씩 술을 마셔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 인사를 위해서 테이블을 돌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때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나의 고기 맛 원정이 시작되었다.


  반대편 테이블에서 아는 얼굴에 빈자리를 시작해서 이미 잘 구워진 고기를 날름 먹어본다. 그렇게 옆테이블에 고기도 냠냠 먹었다. 뭔가 테이블마다 고기맛은 묘하게 달랐다. 분명 고기는 같은 종류인데, 굽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서 맛은 차이가 났다.

  하긴, 술맛도 테이블에 따라서 다른 것 보면 맛의 모든 것은 사람이 좌우하는 것 같다. 술도 마셨겠다. 모르는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 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또 인사 오는 어른들(?) 술 잔도 꿀꺽. 이야기가 한참 진행될 쯤에 중원에서 어른들(?) 테이블에 가서도 인사들 드렸다.

  10년을 바라보는 근무 경력에 이름정도는 들어본 분들은 반갑게 술잔을 채워 주셨다. 사실 잘 몰라도 된다. 이 자리에서 한 잔 술에 목 넘김처럼 잊힐 것을 알지만, 반갑게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사회생활이니까. 신규 시절에 무리하게 잔 돌리기를 하다가 돌아가는 길에 피자를 굽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보니 그 무신경하게 넘긴 술잔의 주인공과 업무도 같이 했었다.

우리 테이블에 고기를 굽는 직원의 자태
옆테이블에 신기술에 놀랐던 1인

  그렇지만 돌고 돌아 결국은 친한 직원이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종료의 선언을 기다렸다. 내가 아무리 고기가 좋다 해도 모르는 사람보다는 친한 직원들을 찾듯이. 아무리 직원보다는 집에 있는 가족이 더 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니까.


  그 틈에 이야기를 한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 말이다. 그러다 나온 말이 다이어트였다. 아니 정확히는 체증 증가가 다들 심해져서 고민인데, 2kg 정도 찐 것 같다 말하니 다들 그렇다고 해서 묘한 안심이 들었다. 평소에 '혼자 죽을 수 없다'며 주변을 챙겨 먹인 보람이 있었다.


  '혼자 죽을 순 없다?'


  정말 죽고 싶었던 나한테는 좀 어색한 말이지만, 이것도 꽤 노력한 결과였으니, 자랑스럽게 말한다.

  "혼자 죽을 순 없다. 그러니 너 좀 더 먹어"


  그 사이에 중앙에서 회식의 종료 선언이 들렸다. 아직은 참 열심히 살고 있는 나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비록 집에는 아무도 없지만, 남이 구워준 고기를 야무지게 먹고는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참 보기 불편하지만,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구웠던 다양한 고기 맛을 즐기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렇다면 그 정도의 잠은 용납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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