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전>이라는 책이 너무 깊이 와닿았다. 아마도 시인이 주는 감성적인 표현이 요즘은 필요했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시를 읽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절절하게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읽고, 다른 책도 찾아서 봤을까? 김소연 작가의 책에서는 나에게 없는 깊은 감수성과 글에 대한 고민이 페이지마다 담겨 있었다.
새삼 시인이 부럽다. 자금의 내 굳어버린 머리에서는 단어 하나로 저렇게 기발한 설명은 나오기 어렵다. 단순한 본능적인 시각과 미각은 살아 있지만,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창작의 섬세함은 칼날이 어설프고 무디다.
간혹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약간 공허한 마음이 든다. 과연 내가 올린 이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봐줄지도 의문이고, 나의 만족으로만 끝나는 행위가 되지 않을지. '발행' 버튼 누르기를 주저할 때가 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모든 작가의 묵은 고민이 아닐까? 창작보다 남에게 보이는 순간을 주저하면서도 평가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 모순된 감정이 함께 하다는 것은 글쓰기의 신기한 힘이다.
사실 작가라 칭하는 모든 사람은 위대한 도전가이다. 나는 독자를 모르지만, 독자는 나를 빤히 지켜보는 불편한 상태임에도 외치는 용자다. 그런 용자들이 매일 같이 쏟아내는 브런치의 글과 지금도 서점에 가득한 기성작가들의 글 속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나의 존재는 자주 무기력해진다. 부족한 글재주로 험난한 바다에 나온 기분이다.
특히나 나는 여러 장르를 섞어서 올리는 편이지만, 부족한 소재는 유독 먹거리 글에 의지하는 것도 맞다. 솔직히 소재의 인기는 확연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유명한 크리에이터는 아니다. '푸드'라는 코드에서도 그렇지만,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조회수 많은 작가들의 글은 나 또한 유독 눈길이 많이 간다.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색을 찾기 위해서 난 3년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잃을 때마다 처음 내가 올린 글을 본다. 서툴지만, 다부진 용기가 보인다. 독자보다는 내 이야기를 쏟아낸 말들 뿐이지만, 애틋하다. 아팠기에 거침없이 쏟아 냈던 내 초반의 글들이 새삼 생각났다. 이 또한 김소연 작가의 덕분이다.
<한 글자 사전>에서 '획'이란 단어를 쓴 말을 생각하면서 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획을 그리면 글씨를 쓰게 되지만 획을 그으면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나도 획을 그을 수 있을까?
오늘은 시인이 무척이나 부러운 하루. 나만의 인생의 획을 그을 수 있을지. 어느 시인이 풀어놓은 단어들에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