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어느 영화관에서 이영애, 유지태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는 유지태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대사를 했다.
"라면 먹을래요?"
영화를 보고, 사랑의 허무함을 알기에는 어린 나이였으나(당시 필자는 20세였다). 영화 대사의 찐득한 대사는 20년이 지난 후에도 여러 가지 패러디로 듣게 되었다.
"라면 먹고 갈래?"
순진함을 두른 나의 20대를 지나서 조금은 연애에 초월한 마흔이 넘은 시점에도 썸녀에게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다. 대부분 장난으로 말하는 것임을 알지만, 남자들은 뇌가 정지된다. 참 웃긴 상황이지만, 20년 전에 나는 라면이 호감의 매개물이 될 거란 생각은 못 했다. 라면이 이토록 에로틱하게 들리는 것은 사랑이라는 대중적인 것과 그 특수한 상황이 묘하게 맞물리는 모습 때문 아니었을까? 이후에 모든 연인은 커피가 아니라 라면을 먹자는 말이 농도 깊은 호감의 표시가 되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왜 하필 라면이었을까? 필자의 집에도 라면은 종류별로 있다. 습관적으로 특이한 라면은 사두는 편이고, 자주 먹는 라면은 근처 편의점에서라도 밤 늦은 시간에도 사 먹는다. 어느 집에서나 커피는 없어도 라면 한 봉지정도 있는 것이 정상인 상황이 지금의 모습이다.
아마도 자취하는 사람에게서 라면은 햇반과 더불어서 필수 아이템이 아니었을까?(영화가 나왔을 적에는 햇반은 사실 사치였다.) 적어도 우리 집에는 라면이 있으니, 함께 나누자. 그런 뜻인데 밥 먹자는 표현보단 덜 무겁고, 차를 마시자는 것보다는 가까워진 느낌이다. 커피를 줄 수 있는 시간에 밥만큼 맛이 좋은 라면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호감의 상대에게 줄 선물로는 최고가 아니었을지.
흔한 자취생의 라면 목록(필자의 자취 아이템)
지영준 작가의 <오늘도 라면입니다>
덕분에 라면이 친숙하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고 책이 나올 거란 생각은 또 하지 못 했다. 딱히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나는 라면에 이토록 진심인 사람이 있다는 것도 서점에서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반대로 내가 책에 진심이 아니었다면 작가의 작품을 만나지 못 했을 것 같다.)
누구나 좋아해도 딱 거기서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인의 취미를 드러내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 특히나 내가 잘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의 스토리뿐이다. 이를테면 공부를 잘해서, 취업을 잘해서, 투자를 잘해서 나를 따라 해 봐라는 이른바 부러운 취미 혹은 능력이다.
그럼에도 남들이 잘하지 않으나, 소소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덕질을 하는 사람에게는 '덕후'라는 명칭으로 평가 절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라면에 대한 사랑도 그런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나도 라면에 관한 책이 나왔다는 것은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편견이었다. 적어도 나는 지영준 작가를 일반 덕후라고 칭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꿈을 이룰 수 있나요?"
작가는 이 세상 라면을 다 먹어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좀 독특하지만, 대단한 포부다.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은 행복해 보이며, 그 열정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나도 떠올려 보면, 밀리터리 덕후다. 면에 대해서도 그렇고, 특히나 수제비는 찾아다니면서 먹는 편이다. 그럼에도 한 주제를 가지고 책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했다.
서점에서 전생사 책이나, 와인, 커피에 관한 책을 접했으면서도 좋아하는 라면에 진심을 다하지 못했을까? 남들처럼 그냥 먹기만 하고, 유행어처럼 말하는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만 생각한 틈에 작가는 라면을 탐구했다.
작가의 꿈처럼 세상 모든 라면을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꿈에 한층 다가간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덕후 생활에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새삼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가 다시 떠오른다. 서로의 호감에 라면처럼 빠르게 사랑했으나, 또다시 시들해진 서로에게 멀어질 이유를 애써 나열하며, 이별을 고했던 연인의 모습. 방구석에 있는 라면처럼 흔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알고 있지 않던가? 그 이별 뒤에도 결국 그 둘은 누군가를 또 사랑하고 이별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라면의 소재라는 것이 친숙함과 가벼움을 말하려고 했던 소품이었다면, 그 사랑의 인스턴트 같음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솔직히 변하더라. 라면이 가벼움을 이야기하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지금은 라면 같은 사랑이라면 오히려 영원했을 것 같다. 서툴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었던 라면 한 그릇이 순수했던 사랑이라면, 차츰 다른 종류와 취향에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닐지? 라면 레시피는 그대로인데, 단지 사람이 맘이 변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런 의미에게 먹는 것에 진심인 독거남도 오늘은 외쳐 본다.
"라면 먹고 갈래?"
난 다양한 라면 종류와 레시피를 갖고 있으니 그리 쉽게 변하진 않을 거야.라는 말을 덧붙여서 말이다. 한결 같이 라면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10월의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