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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Feb 12. 2024

떠나는 길목에서 읽은 책

박완서 <사랑의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으며

  주책없이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버렸다. 무던한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마흔이 되어서도 평탄하지 못한 삶은 길가에 돌부리 몇 개는 심어진 듯. 꽈당 넘어지기 일쑤인 나였다.


  내 글을 읽는 이른바 주된 독자층이 40~50대인 것을 감안하면, 이런 말투 자체가 무척 건방진 말이란 것을 알지만 넘긴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고층을 들어줄 연령대가 보통 그쯤이라서 아닐까?


  내 또래 친구들에게서 부모님 간병이라는 단어는 아직 먼 이야기정도의 현실과 괴리된 말이다. 본인의 행복이 우선인 이기적이지만 어여쁜 삶을 그리느라 바쁜 사람에게 당신에게 불과 1년 후에 일이라고 겁을 준다고 해도 믿어질까? 오히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과 나의 공감은 쉽게 전해진다.


  그래서 그럴까?

  박완서 작가의 글이 요즘 눈에 잘 들어오는 것도 그런 것 같다.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작품을 찾아서 보는 것을 보면 나도 슬슬 노땅이 되어가는 것 같다.

  1970년쯤 쓴 글을 내가 읽기에 거부감이 없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작가의 시골사람임을 공개하는 것과 집에서 쉬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말은 세대를 떠나서 작가의 말이 내 마음이었다.


  '너무 잘해 주는 친척 집보다 불친절한 여관방을 차라리 편하게 여기는...'

   어설픈 관심보다는 내가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심을 세상은 알아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것을 1931년생의 소학교 출신 작가에게서 듣고 나니 가려운 등을 긁어준 듯이 시원해졌다.

  작가의 말처럼 미운 한 살을 더 먹고는 하는 일 없이 있다가 무언가라도 해야 할 분위기에 광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역시 누워있는 것보다는 강제라 앉아서 있으니 마무리 못 할 것 같았던 책을 다 읽고 덮었다. 떠나는 길목에서 읽은 책이라서 주변에 광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작가의 마음으로 상상한다. 내일 출근하기 위해서 떠나거나 임시 공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전자의 사람이 가득했던지 문화동에서 우르르 내리는 모습에서 터미널에서 뭘 할지는 촘촘하게 계획해 본다.


  신년이라서 로또를 샀다. 설령 안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내 돈이 더해져서 행복하겠지. 그리고 딱히 맛은 있을지 모를 우동을 시켜 먹었다. 역시나 무작정 먹은 식사는 실패다. 빈 배를 채우고는 서점에서 새로 읽을 책을 여지 저기 찾아다녔다. 또 문구도 몇 개 골라서 혼자는 나뿐인 커피숍에서 글을 쓴다.

  어쩌다 만난 귀여운 캐릭터에 마음이 빼앗겨서 한동안 구경을 했다.


  '잠만보'

  만화에서도 그 느긋함이 무척 부러웠는데, 다시 보니 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서 쉬고 싶어도 설령 그럴 기회가 있어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따라 하질 못할 저 여유.

  작가이기에 항상 고민했던 박완서 님과 작가를 꿈꾸며 삶을 살아가는 작가 지망생 이춘노는 쏟아 놓은 말들이 무서운데 녀석을 그걸 알까?


  어쩌다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상대보다 1% 더 아끼는 것이다."라는 정의를 생각하면서 그건 어쩜 상대가 나를 그만큼 더 사랑해 주길 바라는 이기심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워지는 오늘은 떠나가는 길목에서 책을 읽었던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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