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결국 다 돌고 도는 것인데
오늘도 난 꽤나 미움을 받은 것 같다. 말할 기운도 없었는데, 확인 겸 대화를 시도했다가 망했다. 그렇게 후회라는 것을 하다가, 잠시 퇴근 후에 진통제와 감기약을 한꺼번에 털어놓고 눕다가 생각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누구나 인생의 대부분은 혼자 있는 시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진짜 혼자라서 외롭다는 생각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나를 먹이고 재우는 부모가 있고, 걸어 다니고 사람을 찾기 시작하면서는 또래 친구들과 어느 순간 학교를 다닌다. 봄날의 벚꽃처럼 화려한 학창 시절이 지나고는 파란 잎처럼 전투적으로 일하는 청년기에도 직장이 있고, 가을처럼 완숙할 때는 나를 찾는 사람들이 내 남은 과일을 얻으려 몰려든다. 설령 겨울에도 땔감이라도 얻고자 찾아오는 게 인생사.
세상 혼자서는 사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외롭다고 말을 하고 있다. 아마 정말 혼자라서 외롭다기보다는 혼자 있고 싶어서 혹은 혼자만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 편한 삶이기에 외로운 것이다.
요즘은 타인과의 대화를 극도로 자제하면서 산다. 사람들은 알까? 나는 타인과의 대화를 극도로 경계하면서 긴장한다는 걸? 태연하게 상담하고, 술술 안 해도 되는 인사말을 주고받다 보니 티는 안나는 것 같지만, 지금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려고 찡그려지는 얼굴 표정에서 이미 상대에게 미움을 깊게 받은 것 같다. 그냥 게임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다시 하기 버튼을 누르겠지만 인생은 직진이다. 유턴이 없기에 다 내가 감내할 인간관계다.
이번생은 망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종종 들었던 후회는 내가 타인을 대하는 방법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내가 녀석들이 하듯이 관조하고, 친해지면 슬쩍 다가가면 될 것을, 난 개처럼 살았다. 이것저것 함께 놀다가 어느 순간 혼자 덩그러니 있는 순간이 와서야 후회를 했다. 그러면서도 던져진 공을 쫓아가듯이 오지랖을 부리다가 다시금 상처받는 반복.
그런데 말이다.
결국 그러한 생각과 상처도 내 감정이고, 내 선택이었기에 그로 인해서 상처받았을 사람을 생각하면 피장파장 아니었을까?
'이런 타인을 생각하는 버릇이 결국 나를 좀 먹는다고 상담시간에 들었는데, 개 같은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오늘도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한 나는 생각한다.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은데, 어디까지 미움을 받아서 넘기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 얼마나 얼굴이 두꺼워야 내 뛰는 심장이 무표정으로 감춰질지? 미움을 견디는 누군가가 알려줬으면 망해버린 인생을 좀 고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