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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Sep 15. 2019

#38. 생극으로 가는 길

 관리인은 사람 눈높이에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올라간다고 했다. 총 8층으로 이루어진 층은 높이마다 가격이 정해져 있었다. 가장 밑과 위 그러니까 1층과 8층은 너무 낮거나 높아서 저렴했고 중간층인 4, 5층으로 갈수록 비싸졌다.

 우리는 아버지 납골함을 어디에 안치할지 정해야 했다. 가장 낮은 층은 250만 원이였고 그들이 말하는 로열층은 500만 원이였다(8년 전 가격이다). 죽고 나서도 로열이 있다니 웃긴 일이라 생각했다. 평생을 하층으로 살았는데 이제 와서 로열이라니. 죽어서 국왕이 될 팔자였던가. 우리는 로열층보다 약간 위에 있는 층을 택했다.


 죽은 사람을 보내는 데 값을 매기는 일. 남은 사람들에게는 잔혹한 일이다. 아버지의 사망이 확정되자마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는 곳에서 한 일은 어머니, 누나, 나를 데리고 1층에 내려가 장례진행사들과 돈을 논하는 일이었다. 기간은, 음식은, 음식 종류는, 냉장고는, 식장 크기는, 도우미 아주머니는, 화한 놓을 자리는, 화장터는, 납골당은, 염은, 옷은, 관은, 끈은, 덮개는, 차량은.

 우리는 몰아붙이는 그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렸다. 더 이상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줄 수 없는데 마지막 가는 길 좋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냐는 그들의 정의(正義). 그 이상한 정의(正義)가 남아 있는 우리를 정의(定義)했다. 죽은 사람에게 얼만큼의 돈을 쓰는가에 따라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나와 장례진행사들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누구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남은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대부분의 일이 그렇게 진행됐다. 돈이 우리의 진심을 대변했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편하게 세상을 떠나는가를 판가름했다. 관의 끈을 고급으로 한다고 해서 그 관을 들어 올리는 내 마음이 더 깨끗한 건 아니지 않은가. 만약 내가 관에 들어 있었다면 빌어먹을 그딴 거 하지 말라고 소리치지 않았을까.



 동서울터미널까지 지하철을 탄다. 2호선 강변역.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고 그 주변에는 노점상들이 줄지어있다. 건물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나온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많은 사람을 볼 수 있다. 휴가를 나오거나 복귀하는 군인들, 버스 운전사들, 고향으로 내려가거나 고향에서 올라온 사람들 그 외 갖가지 이유로 어디론가 떠나거나 떠나온 사람들까지.


 표를 사고 대형 TV가 있는 곳에 멍하니 서 있으면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난다. 벌써 10년 전 군에 입대한 뒤 휴가 나올 때 늘 이용하던 곳. 약국 근처에 있는 햄버거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늘 먹던 메뉴(햄버거 말고 양념감자와 콜라만)를 주문한다.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리면 목적지인 생극터미널이 나온다. 생극터미널은 이름만 터미널이고 따로 터미널이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점이 역할을 대신한다. 그곳에서 미리 돌아갈 버스표를 구매한다. 편의점 건너편 가정집처럼 보이는 건물에서 순댓국을 판다. 국물은 진하고 간은 삼삼하니 건강한 느낌이 든다. 아쉽게도 김치는 별로 맛이 없다. 순댓국집을 나와 왼편을 보면 생극택시라는 간판이 보인다. 완벽한 위치 선정이지 않은가. 편의점과 순댓국과 택시. 이곳에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가 없다. 다들 나와 같은 순서를 거쳐 추모공원으로 향하게 된다. 사실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이 입맛이 뭐 그리 있겠는가.

 택시를 잡아 추모공원으로 향한다. 죽은 사람에게 로열층을 판매하던 곳.


 추모공원은 놀이기구(롤러코스터) 몇 개 가져다 놓아도 될 만큼 넓다. 공원 안으로 들어오면 택시 기사분들이 늘 묻는다.

 “여기서 어디로 모실까? 구관? 아니면 신관?”

 “신관이요. 꼭대기에 있는 건물로 가주세요.”


 택시를 탈 때부터 신관으로 가달라고 해도 되지만 나는 이 질문을 받는 걸 좋아한다. 생극으로 가는 날에는 남과 대화하는 일이 적으니까. 누군가 뭐라도 물어봐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신관 건물 입구에서 안치된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그와의 관계와 내 이름을 종이에 적고 안으로 들어간다. 여러 안치단을 지나 가장 끝에 있는 안치단으로 향한다. 입구에 서면 수많은 납골함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든다. 공손히 손을 모으고 꾸벅 인사를 한다. 정면에 보이는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 오른쪽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납골함도 보인다. 아버지를 보러 오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만나러 오게 되는 셈이니 자주 생각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덜 수 있다.

 어느 날은 짧게, 어느 날은 길게 머물다 온다. 집으로 가는 길은 올 때와 같다. 물론 순댓국이나 햄버거를 또 먹지는 않는다. 그날 먹는 행위는 추모공원에 가기 전 먹은 것으로 끝낸다.

 

 집 현관 앞에서 손으로 양어깨를 턴다. 혹시 모르니 이런 시늉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가져갔던 짐을 풀고 씻는다. 초저녁이지만 잠을 청한다.


 생극으로 가는 길. 매년 두세 번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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