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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Apr 04. 2019

#17. 꽃잎이 떨어질 땐 어떤 소리가 날까

 4월에는 다양한 봄꽃 축제가 열린다. 봄, 꽃, 축제. 이 세 가지 단어를 들으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사랑이, 연애가 있다.


 대학에 다니던 때 서로 인사만 주고받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과 남자애였다. 그 당시 나에게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내 여자 친구가 그 같은 과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등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고 다닌다고 얘기해주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려왔다. 대학 내에서의 연애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내 연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대학 근처 술집에서 ‘xxx 연애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정치나 경제 혹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렇게 토론했다면 지금 우리가 이 꼴은 아닐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나는 남의 얘기만큼 재밌는 것도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 생각하며 그 친구와 여자 친구에게 별 다른 말을 전하지 않았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했던가. 결국 내 귀에만 들리던 얘기가 그 둘에게도 전해지게 되었다. 나는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에게 이 일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들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주변의 수군거림을 참기 힘든 이유도 있었다.

 내가 들은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그 뒤 나는 그 둘이 어떻게 다녀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나를 두고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듯 시간이 지나자 더 재밌고, 논란이 되는 일로 옮겨갔다.


 나중에 그 친구와 따로 만나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내게 사과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친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연애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더더욱 그랬다. 대놓고 싫어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요즘에는 대부분 그런 생각을 속으로만 하는 것 같다. 뉴스에서 '어떤 축제'를 반대하는 시위 현장에 나가 인터뷰하면 대놓고 지옥에 떨어지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당시는 4월이었다. 친구는 만나는 사람과 봄꽃 축제를 갔다고 했다. 그는 대놓고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등 연인들이 하는 행동을 할 수 없었기에 애인과 서로 어깨만을 스치며 걸었다. 밤에는 사람들이 좀 줄어들까 싶어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얘기도 나누고,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기도 하고 말이다. 해가 지고 사람들이 좀 빠졌나 싶어 축제 현장으로 돌아갔더니 놀랍게도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실망한 둘은 그냥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점점 거리에 핀 꽃들이 줄어들고 축제의 현장에서 멀어지는 때 그의 연인이 마치 장난처럼. 친구들끼리 하는 장난처럼 보이기 위해 하하하 웃으며 친구의 손을 잡고 막 달렸다고 한다. 그래야 남이 보기에 이상하지 않으니까. 누구도 욕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지 않고, 불쾌해하지 않으니까.

 여자와 남자로만 이루어진 연인들, 꽃들이 가득 핀 아름다운 축제 거리를 웃으며 뛰었다고 했다. 숨이 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을 때까지 손을 잡고 있었던 그들은 역 근처에 와서야 손을 놓고 다시 어깨만을 스치며 걷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4월이다. 나는 여자 친구와 봄꽃 축제 거리를 걸으며 그들을. 그 둘을 떠올렸다. 바람이 불자 꽃잎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꽃잎이 땅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휘날리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장난처럼 보이기 위해 여자 친구 손을 잡고 뛸 필요도, 남들의 눈을 의식해 어깨만을 스칠 필요도 없다.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왜 어떤 건 괜찮고 어떤 건 괜찮지 않은 걸까.


 그때 손잡고 웃으며 뛰어가던 그들은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까. 그 둘은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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