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유전자 편집 가위)는 축복의 도구일까?
'유전자 임팩트' 서평
저명한 학술지 네이처 편집장을 지낸 케빈 데이비스 박사가 쓴 '유전자 임팩트'는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를 심도 깊게 다룬 책이다.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번 책을 읽기 전까지
크리스퍼라는 용어는 물론이거니와 유전체 편집 기술, 염기서열, RNA 등의 용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용어를 모르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유전자 편집 분야의 역사와 동향 그리고 혁신적인 기술의 발달과 그에 따른 윤리적 문제 등 지금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다
크리스퍼라는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고 왜 중요하며 이 기술을 통해 인류가 어떠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었다.
책에는 유전자 편집에 대한 여러 인물들과 역사, 세부 기술적 학문적 설명 등 아주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이번 책을 읽고 다음의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1. 크리스퍼는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가?
2. 크리스퍼에 대해 아는 것은 왜 중요한가?
3. 크리스퍼 및 인간 유전자 편집에 대한 이슈는 무엇인가?
크리스퍼는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가?
인간의 DNA는 4개의 염기(A, G, C, T)가 32억 개의 서열, 그러니까 4개 문자가 여러 가지 반복되는 서열로 전체 구조가 이루어져 있다.
어떤 서열은 우리의 성별을 결정하고, 어떤 서열은 우리의 머리카락 색을 결정하며 어떤 서열은 지능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 전체의 DNA 구조는 밝혀졌지만 그 서열들의 역할과 기능은 이제 밝히기 시작한 단계인데, 32억 개의 문자 서열 중에서 특정 한두 군데만 정확히 찾아는 바꾸는 일은 크리스퍼-카스 시스템이라는 기술을 발견하기 전까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세균과 바이러스(박테리아 파지) 간의 전쟁에서 세균의 면역체계를 이용하여 불가능의 영역이었던 특정 염기서열을 찾아서 잘라내고 잘라낸 부분을 다른 서열로 교체하는 유전체 편집이 이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적은 비용으로 오랜 숙련과정의 기술 없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교하자면 최초의 컴퓨터라의 크기와 연산속도 및 정확도를 크리스퍼 이전의 유전체 편집 기술이라고 한다면 크리스퍼는 '21년형 고사양 노트북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의 성능과 가성비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특정 사람만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부정확하게 작업하던 컴퓨터 작업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작업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생겼다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지 충분한 설명이 될는지...
크리스퍼에 대해 아는 것은 왜 중요한가?
그렇다면 이 크리스퍼를 포함한 유전체 편집의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현재 동향 등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고 이 것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일까?
현대 과학 기술의 발달은 매우 급변하고 있고 그러한 기술들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영위하며 살아가는데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라는 물체도 우리가 스마트폰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사용해봐야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선천적/후천적 유전 질병에 관련된 기술이나 우리가 식량으로 삼고 있는 동/식물의 유전자 편집 기술 등도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그 혜택과 문제점을 분별하여 이용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문제점을 개선한 결과물들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섣부른 유전자 임상 실험으로 1999년 제시 젤싱거라는 소녀는 결국 목숨을 잃었고 이후 10년 동안이나 유전자 연구의 암흑기가 찾아왔었고, 2012년 이 혁신적인 크리스퍼 기술이 공개된 후에 2018년에 인간의 배아에 이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하여 유전자 편집을 한 아기가 중국에서 이미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어떤 윤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크리스퍼 및 인간 유전자 편집에 대한 이슈는 무엇인가?
크리스퍼는 세균과 바이러스 간의 전쟁에서 탄생한 도구이고 이를 통해 말라리아 모기를 박멸하고 병충해에 강한 작물을 만들어 내는 등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 도구를 인간 DNA에 적용시킬 때는 많은 논란을 야기시킨다.
지금 세상에 살아가기 유리한 조건을 갖춘 우등한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혜택을 일부 기득권들이 누리게 될 때, 이 크리스퍼 기술은 신종 우생학이 되어 과거 나치즘이나 백인우월주의 또는 군국주의의 부활과 같은 잘못된 길로 인류를 또다시 인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미드 마블 시리즈 중에서 '팔콘 앤 윈터솔저'를 봤는데, 특수 혈청을 맞으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슈퍼 솔저 될 수 있는 기회 앞에 힘을 갖는다는 것은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논리로 수용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인간 본연의 고유 특성을 상실하는 것이 옳지 못하는 소신으로 거부하는 인물이 있었다.
비슷한 기회가 보다 현실적인 인간 DNA 편집 기술로 나의 자식이 태어날 때 남보다 우월한 신체조건, 외모, 지능을 갖추게 해 줄 수 있게 제공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특수한 질병에 걸려 삶의 시작부터 또는 중간부터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제거해주는 용도의 유전자 편집 기술이 아니라, 우생학적 관점으로 우등과 열등으로 사람을 구분하여 열등한 것을 죄악시하고 우등한 것을 추구하게 하는 용도의 기술이 될 때 앞으로 사람들이 너도나도 쇼핑하듯 고사양 노트북으로 휴대폰으로 업그레이드하듯 인간 업그레이드에 크리스퍼를 사용한 유전자 아기들을 만들어 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생각한다.
유전자 임팩트의 저자와 이 책에 소개된 여러 과학자들은 이 크리스퍼 기술 자체는 유용한 것이고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의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마치 핵기술과 핵폭탄의 관계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기술 자체는 계속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분명 더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학문을 연구하는 과학자 다운 생각인 것 같았다.
크리스퍼 기술을 인간의 생식 세포에 적용하여 인위적인 인간의 특성을 조작하는 것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하는 반 인류적인 행위라는 주장이나 결함을 고칠 수 있는데 덮어두는 것이 오히려 비윤리적인 것이므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극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하기에 앞서 나는 먼저 생각해봤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책에도 소개되었고 다큐멘터리 '휴먼 네이처'에 나오는 겸상 세포 질환이라는 돌연변이 유전 질별을 앓고 있는 데이비드 산체스라는 소년의 인터뷰 내용이다.
데이비드는 다행스럽게도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한 치료법이 생겨서 이제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태어나서부터 십몇 년간 죽음을 넘나드는 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지금까지 살아와야 했다.
그런 데이비드에게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미래에는 그런 병에 걸리지 않는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하니 데이비드는 그런 기술이 있는 것이 근사하지만, 그것은 그 아이가 결정할 문제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경우 겸상 세포 질환 때문에 배운 것이 많단다.
그 병 때문에 모든 사람을 참을성 있게 대하는 걸 배웠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으므로 그 병에 걸리지 않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 병에 안 걸렸으면 지금의 자기 자신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그 결과로만 놓고 판단할 때 강하고 아름답고 멋진 것이 옳게 보이지만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까지도 포함한 시간 속의 과정들 까지도 한 사람의 인간성을 만드는데 필요한 중요한 재료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