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보기는 종종 하나의 기법이나 공식처럼 오해된다.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술, 혹은 기발한 발상의 문제로 축소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낯설게 보기는 대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작품이 읽히는 방식을 바꾸는 일에 가깝다.
보통 시는 읽힌다.
독자는 문장을 따라가며 의미를 해석하고,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하나의 감정을 받는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구조다.
하지만 그 익숙함 때문에 시는 쉽게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나는 디카시에서, 이런 읽기의 방식을 잠시 멈추게 해보고 싶었다.
설명하는 대신 선택하게 만들고, 해석하는 대신 반응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디카시 〈날 잡아〉는 그런 시도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손가락 위에 걸린 작은 덩굴 하나,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Python)코드 형식의 짧은 문장.
독자는 작품을 읽기 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먼저 마주한다.
“날 잡아”라는 말은
약속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될 수도 있다.
작품은 어느 쪽이 옳은지 말하지 않는다.
선택은 독자에게 남겨진다.
여기서 낯설음은 대상에 있지 않다.
덩굴도, 손가락도, 말 자체도 낯설지 않다.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잠시 멈칫하는 순간이다.
독자는 더 이상 의미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에 잠시 개입하는 위치에 놓인다.
시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작동 중인 구조가 된다.
나는 이것도 낯설게 보기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 형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작품과 독자의 거리, 의미가 생성되는 방식 자체를 다시 묻는 일이다.
낯설게 보기는 설명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작품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이론을 말하기보다,
작품이 먼저 움직이게 하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