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공모전 심사, 이대로 좋은가

작품보다 심사평이 앞서는 구조에 대하여

by 김영빈

디카시는 형식이 단순한 장르다.

사진 한 장, 5행 이내의 문장.

그래서 공모전의 책임은 오히려 더 무겁다.

형식이 쉬울수록 기준은 더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디카시 공모전을 보며

작품의 우열 판단 이전에 반복적인 의문이 하나 생겼다.


이 공모전은

디카시의 전범을 뽑고 있는가,

아니면 심사자의 말로 작품을 성립시키고 있는가.


작품보다 심사평이 먼저 읽히는 순간

수상작을 보며

작품보다 심사평을 먼저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작품만으로는 판단이 유보되고,


심사평을 읽고서도

왜 이 작품이 선택되었는지 선뜻 납득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심사평은

작품을 밝혀주는 보조등이어야 한다.

작품을 대신 완성하는 설명서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스스로 서지 못할 때,

장르는 점점 심사자의 말에 의존하게 된다.


디카시는 ‘이해’가 아니라 ‘경험’의 장르다

디카시는

문장이 앞서면 사진은 배경이 되고,

사진이 강하면 문장은 장식이 된다.

이 미세한 균형은

이론이 아니라 반복된 창작 경험에서 나온다.


그래서 디카시 심사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이 문장은

사진을 되풀이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진 없이도 홀로 서 있는가.


이 질문을

본능적으로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디카시를 심사해야 한다.


디카시에 정통하지 않은 심사위원만 참여할 때의 문제

디카시 공모전 심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세대나 이력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에 대한 숙련도 없이 심사가 이루어질 때 발생하는 구조적 한계다.


타 문학 장르 문인, 혹은 디카시에 정통하지 않은 심사위원만 참여할 경우

심사는 필연적으로 기존 문학 장르의 기준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디카시는

‘사진이 붙은 짧은 시’,

혹은 ‘압축된 문자시’의 하위 형식으로 읽히기 쉽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분명하다.

∙ 사진은 작품의 핵심이 아니라

보조 자료로 취급되고

∙ 문장은 사진과의 긴장보다

언어적 완결성 위주로 평가되며

∙ 디카시 고유의 판단 기준인

사진과 문장의 상호 의존성

심사 과정에서 희미해진다


그 결과,

사진 없이도 성립 가능한 문장이나

심사평의 해석을 통해서만 의미가 완성되는 작품들이

‘우수작’이라는 이름으로 선별되기 쉽다.


문제의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

이는 개별 심사위원의 역량 문제라기보다

심사 구조의 설계 문제에 가깝다.


디카시는

사진과 문장의 조화가 깨지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이 균형은

이론적 이해만으로는 판별하기 어렵고,

반복된 창작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된다.


따라서 디카시 창작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심사위원에게

‘이 작품이 디카시로 성립하는가’를 판단하도록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개선을 위한 역할 분담

문제의 해결 방안은, 배제가 아니라 역할의 정확한 배치에 있다.

타 문학장르 문인이나 디카시에 정통하지 않은 심사위원의 참여는

다음과 같이 조정될 필요가 있다.


① 장르 성립 판단의 분리

∙ 디카시로 성립하는가에 대한 1차 판단은

디카시 창작 경험이 축적된 작가가 담당한다.

∙ 이는 권한 독점이 아니라

장르 오판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② 문학성·언어 윤리 검토 역할

∙ 타 장르 문인은

문장의 태도, 과잉 감정, 상투성, 차용의 문제 등

언어 윤리와 문학적 밀도를 점검하는 역할로 참여할 수 있다.

∙ 이 지점에서의 경험과 안목은 디카시 심사에서도 분명히 유효하다.


바람직한 심사 구조

정리하면,

타 문학장르 문인 또는 디카시에 정통하지 않은 심사위원의 참여는

다음과 같은 위치에서 가장 적절한 역할이 가능하다.

∙ 장르 외부의 시선으로 과잉 여부를 점검하고

∙ 언어 중심의 전문성으로 문장의 태도를 검토하며

∙ 최종 판정에서는

디카시 전문 심사자의 판단과

상호 견제 구조를 이룬다.


이때 심사는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장르의 내부 기준과 외부 시선이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 된다.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공모전의 한계

디카시 공모전은

상을 주는 행사가 아니라,

잘 쓴 디카시의 전범을 선별해

장르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자리다.


기준이 작품 안이 아니라

심사자의 말 안에 있을 때,

공모전은 설득력을 잃는다.


기준이 공개되지 않으면

응모자는 요령을 배우고,

장르는 빠르게 닳는다.


공모전은 상을 주는 제도가 아니라

장르의 기준을 사회적으로 검증학고 합의하는 자리다.


최소한의 제안

디카시 공모전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상이 아니라

더 정확한 기준이다.

∙ 전문 디카시 작가 중심의 1차 심사

∙ 타 문학장르 문인의 문학성·언어 윤리 검토 참여

∙ 사진 필연성과 문장 태도에 대한 기준 공개


이 세 가지만 지켜져도

심사평이 작품을 대신 쓰는 일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맺으며

디카시 공모전은

잘 쓴 디카시가 어떤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리다.


그 책임을 잊는 순간,

공모전은 장르를 키우는 제도가 아니라

조용히 소모시키는 장치가 된다.


디카시 공모전 심사, 이대로 좋은가.


이 질문은 특정 공모전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디카시단 전체에서 지금 반드시 필요한 자아반성이다.


※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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