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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Aug 31. 2022

멀티유니버스, 사라진 유한성의 매력

그래도 남이 만든 건 다 재밌어

1. 멀티유니버스가 도입된 이후 영화가 좀 재미가 없어졌어. 단 한 번의 생, 그 유한함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실패하면 리셋하면 되는 게임처럼 모든 게 쉬워 보이거든. 실패한 서사, 실패한 시네마도 리부트 하면 다시 활력이 돌지. 망자라도 그 영혼을 불러올 수 있어. 근데 그게 뭐랄까 그래서 꼭 이번 생의 지금 당신이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건 없는 거야. 그게 절실함을 많이 깎아먹어. 단 한 번의 생만이 허락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가장 큰 특질을 말이야. 유한한 생이라는 개념을 파기한 뒤 오히려 인간의 이야기는 더 매력이 없어지고 있어. 무한한 생을 지닌 천사나 신이 유한한 인간을 질투한다는 인본주의적 사고의 정수가 흔들리는 거야.


2. 그래서 멀티유니버스의 개념은 폭을 좁혀 어쩌면 우리가 가닿을지도 모를 가능성의 비유로 사용되기도 해. 하나의 존재 안에 우주처럼 수많은 가능성이 잠들어있다. 유한한 생이라는 개념을 파기한 이후로 발생한 노매력의 역설을 그 엄청난 경우의 수들을 뚫고 겨우 가닿는 유한한 무엇인가를 찾는 여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난 그게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사랑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응 사랑. 사실 인류의 존재 이유가 그게 전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사랑이라는 대답이 너무 정답처럼 반복되니까 뭐랄까 이미 영화 한 편을 다 본 기분이라.


3. 그럼에도 아마 또다시 난 영화관에 앉아서 타인이 만들어낸 세계를, 그 뻔한 여정을 다시 함께하고 울고 웃고 감동하고 때로는 빡치기도 하고 있겠지. 그 여정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가 결국 관건일 테니까. 새로운 가능성의 실마리를 훔쳐보고 싶어서. 수많은 우주에서 난 여전히 타인이 만들어낸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경탄하고 있을 거야.


4. 남들이 만든 건 사실 다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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