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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Oct 02. 2022

질풍노도

너 내 동료가 돼라.

단 둘 뿐이었다.

입사 동기는.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을 취재했던 <친애하는 나의 도시>를 제작한지도 2년이 넘어간다. 그 시간 동안 이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다큐에 출연했던 셰프님과 사전 취재로 만났던 문화기획자 한분이 또 서울로 거취를 옮겼다. 좋은 기억이 머물렀던 소담한 중식당은 이제 압구정에 새로 오픈했고 가게는 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해서, 진심으로 기뻤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떠난다. 사람들이.


어딘지 나이에 비해 유치한 구석이 있는 난 사실 동료들을 잔뜩 만들고 싶었다.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함께 나누는 일도 싫어하지 않는 성격 탓에 지적인 자극을 받고 의견을 나누고 무엇인가를 함께 만들어내는 일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원피스 루피처럼 '너 내 동료가 돼라.'라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는 욕망은-실제로 욕망이랄 게 거의 없는(쇼핑 제외) 나로서는 꽤 강렬한-말하자면 거의 유일하게 내가 바라는 소박한 꿈이었다고.


2021년? 2020년? 숫자를 기억하는 건 정말 못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사실 이미 한 번의 이별이 있었다. 단 하나 있었던 동기가 회사를 관뒀다.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이 느껴지던 황무지에서 뭔가를 같이 해볼래 우리?

직종은 다르지만 그래도 뭔가 같이 만들어보지 않을래?


광장이 촛불로 물들던 2017년

우리가 함께한 다큐가 세상에 나왔다.


<우리가 켠 촛불의 기록>


낮에는 기본적인 업무를 해내면서 밤에는 다큐를 편집하고 드물게 시간이 맞으면 출장을 같이 다녔던, 올라탄 봉고차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둘이 나란히 누워서 도착지까지 소곤소곤 다큐 방향을 의논했던, 인터뷰이가 당황할 만큼 광기 어린 눈으로 궁금한 모든 것을-때로는 어리석은 질문들조차도-물어보고 또 물어보는 바람에 두 명의 레슬러를 번갈아 상대해야 하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지를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크리스마스고 나발이고 그냥 편집실에 박혀서 머리채 잡고-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머리채 잡음-옥신각신하면서 서로 눈치 보고, 뭐 그런 기억들로 가득한 아카이빙 다큐.


오직 자가발전만이 동력이었던 이곳에서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들은 거의 유일하게 무척 즐거웠고 자극적이었으며 비비드한 색감으로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였다.


그녀가 떠나고 난 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폐허처럼 느껴져서

비어있는 그 자리를 볼 때마다

어딘가가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겨우 동료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혼자 남겨진 채로는 계속해서 해낼 자신이,

아마도 나는 꽤 나약한 심성을 지닌 인간이라, 없었던 거 같다.


일상은 내가 있든 없든 돌아가는 법이라 매일매일 일을 하다 보니 어영부영 그 허전함이 시간 속에 파묻혀서 흐려지는 듯했는데


꽤 긴 시간의 병가를 내고 다녀와보니

이번에는 후배가 이곳을 떠난다고 한다.


당장 해야 할 것들, 해내야 하는 살인적인 업무들에 대한 걱정보다는

어쩌면 이곳은 희망이 없는 걸까

하는 암담함이 먼저 엄습해서 밀려오는 무력감을 해소하지 못한 채 글을 쓴다.


'우리가 아니라 미래에 희망을 걸어보는 거죠. 그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그 미래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온 마음과 진심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가슴에 뚫린 구멍을 지금은 그렇게 막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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