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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Mar 20. 2023

무등산 조망권에 대한 이야기는 과연 낭만에 불과할까?

광주의 전경은 독특하다. 도시를 무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안쪽 건물들은 산을 넘지 않도록 배치돼 있다. 스카이라인이 낮고 완만하다. 그래서 광주시민이라면 시내 어디에 있든 무등산을 바라볼 수 있다. 별 건 아니지만 꽤 근사한, 눈썰미 좋은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광주의 모습이다. 고층의 빌딩이 가득한 서울이나 바다로 둘러싸인 부산과는 다른, 이 도시만이 지닌 선. 언제나 이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이 광주를 광주로 느끼게 하는 매력이라고 생각해 왔다.  


광주의 스카이라인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시가 건물 층수를 규제해 왔기 때문이다. 광주는 광역시 규모에 비해 개발이 덜 된 도시다. 공단도 적고 기업도 많지 않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역이라 고층 건물의 수요가 많지 않다. 건물들이 높아야 할 이유도 조밀하게 모여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더군다나 광주에서는 무엇보다 (다른 지역 분들은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무등산 조망권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시민들의 합의가 광범위하게 공감을 얻어왔다. 빠르게 개발될 필요가 있는 인구 과밀 도시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광주는 쭉 그래왔다. 이곳의 낮고 느슨한 건물들은 개발에서 소외된 지방도시의 부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등산을 사랑하는 광주시민들의 적극적인 마음들이 모인 산물이기도 한 셈이다.


광주 시민들도 물론 개발을 원한다. 청년들이 자신이 자라난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좋은 일자리를 얻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역에서도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와 좋은 교육을 제공받기를 원한다. 영감이 되는 각종 전시와 세상 아름다운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이 이곳에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그런 개발을 원한다. 그러나 여전히 광주는 소비 도시다. 과거 한 시장은 콜센터를 지역의 좋은 사업이라며 대대적인 유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괜찮은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류 회사인 보해와 기아 자동차 그리고 금호 정도 외에는 규모 있는 기업이 전무하다고 봐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건물 층수 규제를 푼다. 개발의 논리로.


https://kjmbc.co.kr/article/O64vrhQBnpCVQHOMtKU

그래서 나는 궁금해졌다. 층수제한을 해제하는 개발은 어떤 개발인가?

층수제한해제는 광주시민들이 원하던 삶의 모습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좋은 기업을 유치하거나 창조적인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비전과도 큰 상관이 없다. 이것은 결국 상업시설과 아파트 건축에 관련된 문제다. 건설사와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의 자산이 증식하고 땅의 가치는 올라가겠지만 과연 이것이 광주시민들이 바라던 의미의 개발일까? 소비보다는 창조와 생산이 필요한 도시에서 다시 땅과 재건축을 이야기한다. 과밀화로 한계치까지 몰려가고 있는 서울의 단면을 훔쳐오는 것뿐이다.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층수제한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층수 규제는 창의력을 막지 못한다. 서울이나 뉴욕 같은 스카이라인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수평으로 아름다운, 그래서 더 독특한 광주의 경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물리적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무등산. 광주시민들은 고층건물이 산을 가리지 않도록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관리해 왔다.



우리에게는 이미 오래전 아시아문화전당을 건설했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의 심장, 금남로 한 복판에 무등산을 가리지 않도록 건물의 일부를 지하로 매설해 지어졌다. 낮고 사방이 트여있어 개방감 있는 건축물이다. 건물의 벽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시민들은 전당 앞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스케이트 보드를 탄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더운 여름밤을 식히며 시간을 보낸다.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앉아 산을 바라보고 간간이 들려오는 시계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복사열 때문에 한 여름에는 바닥이 불타오르는 지옥의 온돌이 되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전당은 광주의 역사와 정신을 담아낸, 시민들의 애정이 깃든 건물이다. 무등산을 가리지 않겠다는 목표가 오히려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을 만들어내게 한 셈이다.


광주가 시끄러울수록 점점 더 자주 무등산이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시아문화전당 외에도 광주시민들은 역사적으로 무등산과 관련해 개발과 자본 앞에 의외의 선택을 해왔던 경험이 있다. 1989년 광주 시민들은 난개발 앞, 훼손될 위기에 놓인 무등산을 지키기 위해 공유화운동을 시작했다. 일종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으로 무분별한 개발에 맞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연, 역사, 문화 자산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토지기부로 공유화해 지키는 방식이다. 무등산 한평 갖기 캠페인으로 시작한 이 공유화 운동은 약 10만여 명이 참여해 16만 평의 토지를 광주시에 기증함으로써 오늘날 모두가 사랑하는 무등산국립공원의 기반이 됐다. 사적인 자산에 담아낼 수 없는, 외부 자본으로는 구입할 수도 없고 개인이 독점하지도 못하는, 모두의 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광주시민들에게 무등산은 자본이 포섭하지 못한 마지막 정신을 상징한다. 매일 각자 이익에 매몰돼 갈등하며 아등바등 살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면 이 산이 보인다는 것은,  잠시라도 무등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서로가 함께 지켜낸 어떤 약속을 기억해 내는 것과도 같다. 나로서는 여전히 자신의 것도 아닌 산을 지키기 위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무상으로 기증하고 재산을 내놓았던 당시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그런 방식으로 차곡차곡 지켜낸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자본의 세계에서 은밀히 빛나고 있는 작은 틈새를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그 틈새 너머에는 다른 도시가 상상하지 못했던 길을 먼저 발견했던 사람들이 숨겨둔 단서들이 반짝이고 있다. 꼭 그렇게 내몰리지 않아도 된다고 속삭이면서.


그래서 무등산 조망권은 단순히 현실을 모르는 낭만적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 것은 광주시민들이 지켜온 도시의 자산과 정신에 대한 이야기다. 산을 바라보면서 시민들은 그들이 선택한 가치를 기억한다. 함께 공유하고 합의했던 역사의 흔적을 되짚는다. 그리하여 고층 건물이 화려하게 들어선 스카이라인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이 낮은 도시의 선에 담겨있다고 시민들은 감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새 건물들로 짜인 화려한 도시 설계가 아니라 바로 이 틈새라고, 느슨한 여백과 낮은 선이라고, 자본으로부터 멀리 달아나있는 이 자유로운 상상력이야말로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가능성이라고 시민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도시의 철학은 그 도시의 역사와, 시민들이 지켜온 가치와 함께 만들어진다. 정책 역시 그래야 한다. 광주가 지나온 독특한 발자취를 돌아보다 보면 이 도시에는 고유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된다. 무등산의 무등은 높낮이가 없다는 의미다. 광주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과 더 가까운 곳일 수밖에 없다. 서울이나 뉴욕을 따라가지 않고도 우리는 수평으로 아름다운, 그래서 더 독특한 이 도시의 경관을 상상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신중하게 공유해 온 가치 위에 그것을 함께 지켜온 역사를 소중히 얹으며, 우리가 살고 싶은 장소를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는 잠재력이 이곳에 있다. 그 힘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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