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유는 직면(알아차림)이다.
이 글은 사유(직면)에 대한 것이지만 오로지 공황장애 환우로서의 시선임을 미리 밝힌다. 또한 알아차림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내가 이론적으로만 알고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도 어느 정도 쓰여 있다.
말해 두자면 나는 공포(3단계)를 넘어서 본 것이지 불안(2단계)은 아직 진행 중이다.
공포를 넘어섰다고 해서 평소의 불안이 드라마틱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더 이상 3단계를 포함한 무한 루트를 타지 않고 있다.
공황이 올 것 같아 안절부절 어쩌지를 못하고 우왕좌왕한 경험이 있다. 예기불안이다. 내 글에 있는 단계로 말하자면 2.5단계 정도의 불안을 말한다.
예기불안이 오면 누구나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어쩌지를 못한다. 바로 이 상태가 0.5초의 인지오류들이 잔뜩 쌓여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다. 처음에는 내가 어떤 사건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차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 순간에 나의 0.5초들의 사고루트를 모두 인지하면 좋겠지만 증상이 심하거나 불안도가 높을 때는 그것이 매우 어렵다. (애초에 그것을 인지했다면 불안은 확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명상을 하게 되면서 나는 불안의 이유를 사유해보곤 했다.
순전히 공황장애환우를 위한 사유의 난이도
공포 난이도-두려움으로 인한 사유(직면)의 어려움을 뜻한다.
초반 성공률-시도 초반에 직면할 수 있는 확률을 말한다
후반 성공률-몇 번의 성공 후에도 똑같이 유지될 수 있는지의 확률을 말한다.
기간-장기간 유지되어야 하는 경우일수록 어려움을 뜻한다.
1. 사유의 첫 번째는 공포가 다가오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은 공포(3단계)를 넘어서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포 난이도 상
초반 성공확률 하
후반 성공확률 상
기간 하
이것은 처음엔 힘들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어렵지 않다.
결국 두려움을 벗어나면 더 이상 직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증상이 3단계까지 확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2. 사유의 두 번째는 그 공포의 시간(3단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진정이 되어 약간의 증상만이 남아 있을 때 내가 왜 그랬는지 또는 지금 이 순간을 사유해 보는 것이다. 아마도 이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불안의 이유를 찾고 있을 것이므로 증상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대로 사유한다면 그 증상마저도 사그라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것 또한 알아차림이다.
공포 난이도 중
초반 성공확률 중
후반 성공확률 중
기간 중
불안이 있을 때마다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덜 할 때 시도하기 때문에 시도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과용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시간이 지체되면 사유가 아닌 걱정으로 변질되므로 적당한 시간을 정해두자. 나도 이 굴레에서 오랜 시간 굴렀다.
3. 사유의 세 번째는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사유의 최종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1,2번을 하다 보면 나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전의 사고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이 병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지금부터의 나는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며 나는 아직 다다르지 못했지만 이것이 아마도 완치를 바라보는 키가 될 것이다.
공포 난이도 하
초반 성공률 상
후반 성공률 하
기간 상
이 마지막 사유는 나의 사고습관을 바꾸는 연습이다.
의식을 미래가 아닌 현재에 두는 것이다. 애초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면 불안할 일이 없다. 처음 시도할 때 두려움도 없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즐거울 수도 있지만 이것은 긴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꾸준함을 생각한다면 가장 길고 어러운 사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왜 그랬지?
사유는 꼭 필요한 루틴이고 직면 시 제대로 나의 오류들을 찾는 방법이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매우 중요한 주의 사항
하지만 자기 사유에도 함정이 있다. 특히 증상이 심한 2~3단계를 넘나들 때에는 더욱더 신중히 사유하는 것이 좋다. 내 마음이 여유가 없고 불안이 높을 때의 사유는 금방 걱정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 '왜'는 이 증상이 계속될까 봐, 공황이 올까 봐, 내가 무너질까 봐 등등의 인지오류인데, 그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 만으로 불안이 사그라드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게 되면
이 자기 사유의 함정에 금방 빠지게 된다. 쉽고 빠르게 불안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 함정은 자기 사유를 근심걱정으로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 왜? 왜? 왜?로 하루 24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인과를 고민하는 것은 인간에게 너무나도 쉽다. 뇌가 하는 일이 그 일이라서 더욱 그렇다. 특히나 나에게 부정적인 인과는 더욱더 쉬운 일이다.
나의 사유는 어느새
1. 이렇게 하는데 왜 불안이 좋아지질 않아?
2. 내가 알아차림을 잘못한 건가?
3. 난 지금 왜 불안한 거지?
이런 식으로 끝도 없는 걱정의 바다를 항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 상태는
1. 이렇게 하는데 왜 불안이 좋아지질 않아?->이렇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당장의 불안을 좋아지게 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
2. 내가 알아차림을 잘못한 건가? ->맞는 말이다. 알아차림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인데도 나는 지금 이 느낌에서 벗어나려는 욕망만이 있는 상태일 것이다.
3. 난 지금 왜 불안한 거지?->나는 환우다. 아무 이유 없이 불안이 시작될 수 있으며 이후의 인지오류는 알아차림이 제대로 되지 못한 2번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것 또한 알아차려야 하는데도 없는 이유를 찾는 오류를 범한다.
결국 쉽게 불안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욕망이 바탕이라면 나는 이미 그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불안은 확장된다. 분명 답이 있는데 찾지 못한다는 확신이 나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인 나의 뇌는 이런 식으로 작동되고 있고 그 부정적인 사고의 공식이 99%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사유가 길어지는데도 오류를 찾지 못하고 불안이 지속된다면 이때 해야 할 것은 그것을 멈추는 것이다.
내가 환우라는 것을 잊지 말자. 늘 이것이 첫 번째다.
모든 일에 인과가 있다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렸다면 생각대신 몸을 움직이자.
나의 뇌는 이미 공식이 생성되어 있고 그것이 자동으로 작동한 것뿐이다. 내가 해야 할 목표는 그것이 작동하기 전에 멈추는 것을 반복해 그 공식의 퍼센티지를 낮추는 것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사유가 아닌 걱정의 반복은 멈추어야 한다. 나에겐 그것을 멈출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