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브메 Apr 14. 2022

두 달만에 이직했다

좋아하는 일에 대하여

휴식이 필요했다. 단 2주만이라도 좋으니 훌훌 떠나고 싶었다.


두 달 전, 나는 퇴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니던 직장에 다시 열의를 가져보기로 했다. 그런데, 한 달만에 무너졌다.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내가 광고라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주니어 치고 무거운 고민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내가 하고 싶던 일인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뭘까?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했더라? 학창시절 진로고민할 때 들었던 질문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던 와중,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마케터 채용 공고를 보게 됐다. 10년은 넘게 지켜봐온 브랜드였다. 누구나 알고, 두터운 팬덤이 있는, 나에게도 추억이 있는. 모집 요건을 보니 대부분 충족됐다. 그래서 바로 지원했다. 이 브랜드에 대해 쓸 얘기는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바로 지난 주, 일사천리로 면접을 보고, 처우 협의를 하고, 최종 합격했다. 오퍼 레터를 받은 그 순간 퇴사를 통보했다. 지금이 너무나 싫어서가 아니라, 빨리 새롭게 적응하고 싶어서. 다음 스텝을 밟고 싶어서. 열의를 느끼며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을 얼른 시작하고 싶어서.


MZ세대들에게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좀 더 나은 곳이 있다면,
나를 이끌어줄 선배가 있다면 이직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러는 한 조직에서 오래 있는 것은 무능력의 지표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MZ세대의 관심사를 요약하면 '성장'과 '전문성'이다.

- 커리어 엑셀러레이터 김나이

퇴사하는 MZ, 그들은 왜 떠나는가 | EBS 비즈니스 리뷰 김나이 편


MZ세대의 퇴사, 미디어로 익히 들어오고 나도 한번쯤 가늠해본 일이지만 이렇게 빠르게 나의 일이 될 줄 몰랐다. 사실 틈틈히 준비는 하고 있었으면서도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생각하라는 말이 있듯이) 막상 현실이 되니 스스로 당황했다. 처음엔 목구멍까치 차올랐던 요구사항이 쑥 내려가고 지난 일들이 미화되기 시작했고, 하루이틀 더 지나자 날 성장시켜주셨던 분들에 대한 죄송함과 적잖이 느끼셨을 배신감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가장 따르고 좋아했던 팀원님의 외마디가 내겐 확성기처럼 들렸다.


빵 뜨는 광고를 만들고 싶었다. 어디 가서 "저 광고 내가 만들었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 3년을 채우지 못한 이른 퇴사가 나조차도 아쉬웠다. 많은 주변인들도 그것에 대해 물어왔다. 너 괜찮냐고. 너가 하고싶은 건 그래도 다 해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합리화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오래 생각해본 결과 그게 꼭 광고회사에서만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케터 사이드에서라면 오히려 내 브랜드를 갖고 더 큰 캠페인을 런칭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물론 광고 캠페인은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업무 스콥에 비하면 일부분이겠지만, 역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결과까지 책임지며 데이터 분석 역량까지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유저들의 목소리 또한 라이브하게 들을 수 있을 거고.


마지막 면담 때 "너 굉장히 들떠있구나"라고 말하셨던 상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난 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죄송하게도 티가 났나보다. 그 땐 아닌 척 했지만 지금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게 기대된다고.

1st Dream에서 2nd Dream의 페이지로 넘어가는 지금, 무척 설레인다고.

작가의 이전글 결국, 퇴사하지 않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