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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Mar 05. 2024

대표님 혹시 저를 차단하셨나요?

액셀러레이터 매니저의 고충 

내 직업이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말이 좋아서 번지르르하게 있어 보이는 직무일 것 같지만 실상 현실로 들어가 보면 내 직무는 스타트업 - 정부기관 사이에서 용역을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매 번 숨 쉬듯이 깨닫는다. 


교육, 행사, 멘토링을 진행함에 있어서 분명 지원사업에서 '꼭 해야 할 사항' 들에 대해 숙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은 뒷 간을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듯이 지원사업과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만 하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던 대표님들은 모두 사라지셨다. 그리고 남은 건.... 아래와 같은 반응뿐이었다. 


- 이거 꼭 해야 해요?! 

- 저희 요즘 진짜 바빠서 안될 것 같은데 어쩌죠?! 그냥 탈락시켜 주세요. 

- 아.. 전 진짜 필요가 없는데. 이거 이미 아는 내용이라고요. 

-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되나요?!




처음에는 많이 바쁘다는 상황을 이해하면서 기존에 협약된 교육 기간보다 일부 기업들은 별도로 일정을 잡아 진행을 하였지만 나중에서야 모든 것들은 '귀찮아서' 혹은 '선정되었으니까'로 귀결되는 이유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기업들은 선정이 되자마자 잠수를 타는 경우도 있고, 자체적으로 프로그램 선정을 취소하고 반납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 반납도 쉽지는 않지만 결국 이렇게 반납하는 기업 때문에 한 끗 차이로 떨어진 간절한 기업들은 피해를 입고, 사업을 담당하는 나와 같은 매니저들도 꽤 골치를 앓는다. 


그래서 으레 기업 대표님들을 어르고 달래서 '제발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말을 내뱉으며 교육과 행사에 기어코 참여시키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부심이 아니라 현타가 오곤 한다. 이렇게 바빠서 못하고 까먹고 불만이 많다면 지원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분노가 단전부터 끓어오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그래, 그렇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곤 기계처럼 '죄송하지만.. 죄송한데... ' 라며 나를 연신 숙이고 거의 빌듯이 기업 하나하나를 설득한 적도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말 별다른 피드백 없이 높은 참여율을 보여주는 스타트업은 눈에 띄기 마련이고, 특히 매니저에게도 매너가 좋은 대표님들은 기억에 깊게 남는다. *생각보다 매니저급에게 친절한 대표님은 없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듯이. 


그래서 나는 주로 이직을 하더라도 그렇게 기억에 남는 좋은 기업들은 꼭 자사의 프로그램에 추천을 해주거나 혹은 이벤트가 있을 때 제일 먼저 정보를 공유해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좋고 싫다'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전 회사에서 스타트업 공모전에 선정이 되어놓고 지원되는 교육을 안 받겠다면서 나의 후임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대표님이 계셨다. 안 받고자 하는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바빠서, 귀찮아서' 사실 그 기업은 선정 점수로 따지고 보면 제일 하위에 가까웠는데도 매너와 태도도 그러했다. 결국, 우리는 상위 기관과 협의하에 그 기업은 배제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액셀러레이터는 일반 민간 기업과 차이가 없어서 이런 일이 너무 빈번하기도 하고, 매니저인 우리의 핸드폰 번호를 아예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우리가 돈을 뜯는 사채업자인 것처럼 취급을 받는 날에는 서글프기 짝이 없다. *이러려고 내가 이런 일을 했나. 


그런데 이런 상황은 창업과 관련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전담부서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인은 창업 기관에서 근무 중인데도 불구하고 늘 이런 민원 전화를 받는다. '왜, 지원금 안 주느냐?'부터 시작해서 욕설은 아주 귀여운 정도의 컴플레인이었다. 지인의 고충을 듣노라면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어쨌든 이 생태계에서 스타트업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현타가 오는 순간은 아마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제발 전화 좀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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