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야생이 아니라 지옥일지도 모릅니다
첫 일터에서 보육하게 된 기업 대표님들의 나이는 대부분 40대 ~ 50대였다.
대기업에서 그래도 한 가닥을 하시다가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창업을 하신 분들도 있었고, 으레 우리가 말하는 정치질과 나를 알아주지 않는 회사를 떠나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신 분들도 있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대부분은 과거의 번영을 현재까지 이끌고 와서는 눈과 입 그리고 귀를 닫고 자신들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각각의 세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셔야 해요! 여기서 이러시면 이제 야생으로 나가셔야 한다고요’라고 외치며 대표님 한 분 한 분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이 나의 주요한 일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공유 오피스 개념으로 다양한 창업 기업을 위한 사무 공간지원이 활발한데, 생각보다 오피스에 대한 공유 개념이 만연화 되어있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있던 공간은 국가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단돈 1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비용으로 입주자격을 얻고 1년, 2년, 3년 소소한 성과라도 내면 계속 머물 수 있는 안락한 군함 같은 곳이었다. 심지어 시범적인 사업이었기에 입주 자격에 대한 문턱은 낮았고, 입주한 이들에 대해 성과치도 낮았다. ‘올 해는 어려워서 성과가 없는걸요’ 하면 ‘다음 해에는 분발하셔야 해요’라는 정도로 위로를 건네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운영은 누군가에게는 독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제도와 지원을 잘 활용해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리고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3년 8개월을 근무했지만 ‘성공’ 해서 나간 대표님들은 겨우 7팀 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대표님이 한 분 있다. 늘 하회탈 같은 넉살 있는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인 분이셨다. 늘 내부에서 진행되는 행사, 교육에도 참석율은 100% 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대표님들로부터 민원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술을 드시고 오는 것 같아요’ , ‘아니 휴식공간에서 자는 건 좋은데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요’ , ‘여기 24시간 개방이지만 너무 한 것 같아요. 아예 여기서 지내시는 것 같다니까요!?’ 언젠가부터 들어오는 민원은 나 스스로도 주의를 전달할 선을 넘어버렸고, 결국에는 단장님에게 보고가 되어 1:1 면담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네’만 연신 반복하던 대표님은 터덜터덜 사무실을 나가 자리에 힘없이 앉으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40대까지 어느 대기업 개발팀의 부장님으로 근무하셨던 대표님은 뒤늦게 이루고 싶은 <꿈> 이 생겨서 퇴사를 하고 창업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기업이라는 안락한 곳에서 나와 아무런 지식과 경험, 자본 없이 창업에 뛰어든 파장이 꽤 컸다. 퇴직금으로 연명하는 것도 잠시 창업을 위해 뛰어든 시기에 아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돈이 가장 크게 들어가는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니 가정주부였던 와이프가 일터로 나갈 수밖에.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개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점점 멀어졌고 결국은 양육권까지 포기하고 이혼을 당하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잃은 만큼 보상처럼 열심히 몰두한 개발의 성과가 나오면 좋았겠지만 개발에 몰두한 결과치가 그리 성공적이지도 않았다. 이미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트렌드에 뒤쳐지고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로 1년, 2년, 3년을 가다 결국 6년 차에 접어든 것이었다. 가족도 잃고, 집도 잃고 그러다 입주하게 된 이곳이 오히려 더 집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마치 N수생처럼 포기하지도 놓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상태로 50대를 맞이한 것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왠지 모르게 나의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고, 조금 더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새로운 교육이나 지원사업 혹은 개발 이슈 등등 다양한 소식을 전해드리고 꼭 지원하라며 나의 몇 되지 않는 지식과 인맥도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산업 전문가와의 멘토링 자리에 나도 동석을 하게 되었는데, 하하 호호 웃으시면서도 할 말을 다하는 대표님을 마주하였다.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멘토가 무색할 만큼 웃으면서도 자신의 고집은 꺾지 않았고 오히려 ’ 성과가 없어서 나가라고 하시면 나가도록 할게요 ‘ 의 마인드였다. 결국 그 대표님은 내가 퇴사를 하기 직전까지도 그곳에 아직 머무르셨고, 이후에도 종종 전 회사 상사들과의 만남에서 ’아직 그 대표님 입주해 계셔. 늘 성과는 없지 ‘ 라며 소식을 받곤 하였다.
웃기는 사실은 앞서 말한 대표님과 똑같은 위치에 계셨던 대표님이 있으신데, 그분은 나에게 ’ 멘토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요!‘ 라며 늘 교육에 불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피드백을 받기 시작하더니 5년 내내 만들어 온 개발을 버리고 다시 시작해 6개월 만에 외부 공모전 수상 소식을 시작으로 지원사업의 일부선정이 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마주한 성공 해서 나간 대표님들 7팀에 포함되신 분이 되었다.
나는 창업에 그리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성공한 케이스보다 실패한 케이스들을 더욱 많이보고, 마음이 가기 때문에 창업의 고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왕 창업을 시작했다면 무조건 적으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가라앉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구명조끼와 나무배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수영을 하거나 가만히 구조를 기다리며 추위와 싸우고 물에 떠있거나. 하기로 했으면 어떻게 해서든 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방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왕 하기로 했다면 제발 포기하지 말고 죽기살기로 살 길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