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대리 Apr 03. 2024

쉬운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환승이직 그 어려운 걸 어쩌다 보니

헤드헌터를 통해서 이직을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려진 나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고 이직 제안을 많이들 하지만 결국 서류에서 떨어지면 헤드헌터와의 연락도 끝이다. 왜 떨어졌는지 말도 없고, 내 서류를 어떻게 보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냥 ‘너 이거 쓸래? 말래?’ 그 제안에 나는 선택만 하면 알아서 제출해주고 결과지도 전달을 해준다. 최근 퇴사일을 앞두고 정말 특이한 헤드헌터를 만나게 되었고 심지어 내가 원하는 회사, 직무 그리고 포지션의 이직제안이었다. 물론 퇴사일까지 2주가량 남아있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지원에 대한 의사를 밝혔고 그 이후부터 내 전화기에 통화 1순위는 바로 헤드헌터가 되었다.


이렇게 매니저처럼 나의 채용 프로세스를 관리해주는 헤드헌터를 처음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신뢰도 쌓였지만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든든한 ? 서포터 덕에 첫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떨어졌다’ 고 생각했다. 무언가 지쳐있는 대표님의 모습과 나의 이야기를 그다지 흥미로워 하지 않는 공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아, 면접 말아먹었네’ 라는 생각으로 그 날 소맥과 내가 좋아하는 멍게로 하루의 피로를 달랬다. 그런데 다음날, 1차 면접 합격 전화와 함께 2차 실무진 면접을 빠르게 진행하고 싶다며 헤드헌터는 연신 나에게 ‘축하합니다!’ 라는 인사를 건네었다.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덜컥 겁이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2차 실무진 면접에는 허들이 존재하였는데 바로 내가 [연차를 모두 소진] 하였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남은 퇴사일까지는 겨우 2주, 그리고 그 안에 나에게 주어진 중차대한 일은 없었다. 그저 업무를 서포트하고 여태 한 과업들을 정리하면 되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연차를 모두 소진하였다는 것이 크나큰 문제로 다가왔다. 결국, 대표에게 사실대로 알리지 못한채 오후 반차 사용여부를 물었다. 예비 퇴사자인 직원에게 좋은 대답이 돌아올리 없었지만 대표는 내가 만난 대표 중에 가장 감정적인 대표였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4가지 였다.


선택1. 연차를 소진하였으니 반차 (= 병가) 사용 후, 진단서 제출

선택2.면접 일정을 퇴사일 이후로 잡기

선택3.(이제 안 볼 회사 나는 모르겠다 시전~ ) 무급휴가로 연차 사용하고 면접 보러가기  

선택4. 퇴사 이후에 진득한 이직 준비하기로 하고 면접 포기하기


사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바로 1번 이었으나 실제로 큰 병치레가 없음에도 진단서를 제출해야하는 행위 자체가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 외에는 결국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었다. 일정 요청을 위해 헤드헌터에게 나의 상황을 말하자 퇴사를 앞둔 사람에게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되레 퇴사일이 정해졌으니 그냥 나오라는 강경한 대책? 을 제시하였다. 나는 무언가 그 말이 퍽 위로가 되거나 조언이 되지는 않았지만 도의적으로 회사에 예우를 다하고 있는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답답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헤드헌터와 면접 일자가 아닌 면접 시간을 퇴근 직후로 1시간 정도 미루었다. 면접관에게도 대단히 죄송했지만 선택지가 그리 많지는 않았고, 나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실무진 면접에 대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나의 상황이 해당 회사에 어떻게 전달될지는 모르겠으나 구직자로서 나는 (구) 회사에도 (신) 회사가 될지도 모를 회사에도 연신 ‘을’ 로 양해를 구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무단결근을 할 만큼 나는 그리 얼굴이 두꺼운 사람도 아니며 돈을 써서라도 없던 병을 만들어서 병가 진단서를 내는 정성까지 보여야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묘한 것은 내가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에 긍정적인 결과들이 보여지고 기회들이 오는 것 같은데 왠지 나는 그리 신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빠른 채용 프로세스를 나에게만 적용하는 것일까? 면접일자 조율을 통보하는 것일까? 왠지 모르게 채용에 다급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프로이직러이자 프로퇴사자인 나는 덜컥 겁이나기 시작했다.


혹시, 이거 또 잘못된 만남의 시작인걸까?



처음으로 환승 이직에 시도하려는 지금 (어쩌다보니 환승이직) 양 측에 모두 양해를 구하고 모두 웃으면서 헤어지고 웃으면서 반겨주는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결국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만약 이직을 준비하거나 혹은 나와 같은 환승 이직에 있다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두 마리 모두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좁디 좁은 스타트업 세계에서 명심하고 이직을 준비하기를 바란다. 늘 이직과 퇴사는 비밀스럽고 조심스럽게.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나는 입사보다는 퇴사에 더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원 뿐만 아니라 사측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인연이 혹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상대를 얼마나 볼까 싶겠지만생각보다 대한민국의 땅 덩어리는 매우 좁다. 늘 그것을 유념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타인이 비난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예우를 다하는 것이 나의 퇴사 곤조였기에 퇴사와 이직에 있어서만큼 태도에 대한 명확함과 기준은 퇴사와 이직을 선택하는 기준만큼 중요하다. 어쩌다보니 환승이직이라는 배에 올라타게 된 지금 멀미가 나서 죽을 것 같지만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하며 최종면접을 준비해보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