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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Jun 23. 2024

전 회사가 망해가고 있다

저 드디어 그만두었습니다!


전 회사를 퇴사한 지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

그동안 전 회사의 동료들과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연은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맙게 늘 나를 찾아주고 연락을 주는 동료들이 있음에 나는 감사한다. 내가 퇴사를 감행한 그 시기에 모두들 내 퇴사를 아쉬워하기도 하였고, 퇴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궁금해하기도 하였다.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승진도 권유받고 있는데 왜 지금 퇴사를 할까? 그 물음에 나는 참 많은 답을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딱 하나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지나고 보니 그 어려움이라는 것은 바로 ‘조직’이었다.

회사 생활을 해오면서 내가 가진 신념들이 위배되는 혹은 선을 넘는 동료들을 가끔 만날 때가 있다. 우리는 직장생활에서 그런 사람들을 ‘빌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회사에서 각종 빌런들을 한 번에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그런 경험을 하였다. (물론, 나도 동료들이 보기에 내가 빌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들은 아닌데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빌런의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전부 모아놓은 곳.

그곳에서 나조차도 내가 빌런이 되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미쳐가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

그것이 나를 퇴사하게 만들었고 그 후유증은 꽤 오래갔으며 지금 나의 회사 선택 기준과 근무하는 데 있어서 성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업계를 떠나 새로운 업계로 이직도 하게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몇 일 전 잡X래닛에 검색을 해 본 나의 전 회사는 평점이 급하락 하고 있었다.


이제는 ‘경영팀에서 관리도 하지 않는구나’ 싶던 그때 퇴사했던 동료 A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전 회사에서 작년에도 진행했던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올 해도 진행할 계획인데 그 프로젝트 안에 나를 포함한 기 퇴사자들의 정보가 모두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대적인 퇴사를 코앞에 두고 직원 수가 모자르다 보니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우리 회사는 아직도 건실합니다!‘ 를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퇴사자들과 함께 찍은 야유회 사진 등이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물론 이 사실 마저도 예비 퇴사자들이 퇴사자들에게 알려주어 알게 된 정보였고,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동료 A 는 어이가 없다는 기분을 나와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기분이 썩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아주 불쾌하여 ’당장 이 회사를 고소해야지!‘ 라는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거의 감정이 ‘무’ 에 가까울 정도였다. 다만, 점점 전 회사가 몰락하는구나 싶은 마음과 함께 아주 잠시 씁쓸해졌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내가 가장 아끼던 동료이자 회사에서 모든 이들이 퇴사한 후에 유일한 에이스로 남은 동료 B 가 퇴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료 B 를 나는 참 예뻐했다. 인간적으로도 후배로서도 내가 가장 아끼던 동료였다. 그 곳에서 내가 그나마 버티면서도 나중에 이직을 하고 회사를 차리게 된다면 동료 B와는 꼭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동료 B의 퇴사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퇴사를 준비한다며 자리를 잡은 후에 만나기로 기약했고 생각해보니 이제 회사에 남아 일을 제대로 할 직원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회사는 생각보다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또 생각보다 아주 어이없게 빠르게 몰락하기도 한다.

전 회사가 몰락하고 있는걸 보노라면 기분이 어떠냐고 누군가 나한테 물었었는데 생각보다 아무런 타격이 없다.

반년 전에 퇴사를 했는데 타격이 있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내 이력에 남는 회사가 잘 되고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좋지 않은 기억을 심어준 회사가 몰락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그 당시 재직을 하면서 내가 열심히 해왔던 기억들이 새삼 떠오른다. 그리고 왜 그런 열정들을 회사는 잊고, 좋은 인재들을 놓쳐야만 했는지에 대한 씁쓸함과 답답함이 몰려올 뿐이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 회사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 그리고 회계팀의 생각을 들어보길 바란다.

결국, 퇴사의 스타트는 메인급 에이스들과 회계팀의 메인급들이 좋은 회사 혹은 합당한 이유로 회사를 떠나기 시작하면서 남는 이들이 고군분투를 하고,

그 안에서 제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았을 때 그나마 남은 서브급 에이스들이 모두 퇴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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