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습기간이 끝났네요. 축하드려요.
강남 통근러로 살아온 지 어느 덧 반 년이 지났다.
어느 새 강남 통근러의 삶에 적응된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나만의 출퇴근 방법들이 몇 가지가 생겼다.
그래서 시간맞춰 빠르게 퇴근을 하면 1시간 30분만에 집에 도착하기도 하고, 늦는다면 2시간 30분이 걸리는 날도 있다. 다행히 이제는 수습기간이 끝나 한 주에 한 번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그 복지에 안도하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강남으로 통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바로 나의 '저녁' 이다.
보통 나의 '저녁' 은 하루의 회포를 풀면서 맥주 한 캔의 여유를 가지는 휴식이었다.
물론, 진정한 휴식은 아니었고 하루의 일이 너무나 고되다보니 그것을 혼자 푸는 방법이 오로지 [술] 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나에게 있어서 평일 저녁 소소한 휴식은 바로 술 한 잔을 기울이는 것이지만 회사가 멀어지니 자연스럽게 음주량도 줄고, 음주량이 줄어드니 음주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 대신에 자기계발로 강의를 듣거나 아니면 정말 충분한 휴식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음 날 도시락 준비하는 것에 집중하는 날이 많다
강남으로 통근을 하면서 바뀐 것은 저녁뿐만이 아니다. 바로 '재정상태' 이다.
나는 올 해부터 나의 재정상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요소가 있었겠지만 결국 그 원인은 내 나이 40에는 은퇴를 하고 싶다는 바램에서였다. 그리고 그 은퇴를 위한 준비중에는 종잣돈을 모아서 결국은 나의 부를 스노우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고,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들 외에는 정말 모든 것들을 최소화하기 시작했다. 강남의 점심값은 회사에서 지원이 되지 않으면 1만원을 웃돈다. 커피값까지 하면 거의 하루에 15,000원 ~ 20,000원 이상은 아주 쉽게 나가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강남에 입성했을 때부터 나는 도시락을 챙겼고, 커피도 쿠폰을 사용하거나 무조건 회사 공유오피스 커피머신을 이용했다. 교통카드는 어쩔 수 없다.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나에게 공항철도와 수도권 지하철에 할인혜택이 적용되는 카드가 없으므로 교통비는 정말 숨만 쉬어도 나가는 나의 고정지출비용이다.
(+) 이제는 도시락 준비하는 일이 하루의 루틴이 되었고 냉장고 비우기는 달인이 되었다.
그리고 강남으로 통근을 하면서 '웃음' 을 잃었다.
혼자서 히죽거리며 다니는 유형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편이었다.
출퇴근길에 음악 하나로도 '오늘 기분이 좋아!' 라고 생각했던 하루하루가 있었는데 유독 강남으로 향하는 출퇴근 길에서 사람들에 치이다보면 어떤 날은 정말 급격히 기분이 땅으로 꺼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몸도 무겁지만 마음도 무겁고 기분도 무거워서 그 어떤 걸로도 정말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날에는 그냥 일찍이 자는 게 최고다.
출퇴근 길에 마주하는 직장인들의 풍경들에 공감을 하면서도 나는 한 편으로 애처롭다.
그리고 '난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똑같은데, 그 표정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괜시리 한국의 직장인 현실이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자리하나를 빼앗겼을 뿐인데 내 속에서는 열불이 끓어오르고 이름모를 오늘 처음 보는 상대를 미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미움은 다음 자리에 앉자마자 사라지는 아주 단순한 미움이다. 불편함, 예민함, 짜증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스스로 느끼는 날도 있지만 타인을 통해 느끼는 날도 더러 있다. 그 안에서 점점 출퇴근 길에는 웃음기를 싹 빼고 마치 무감정의 로봇처럼 전동차에 버스에 내 몸을 그냥 맡긴다.
하루에 얼마나 웃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마치 표정을 싹 갈아엎는 것 처럼 출퇴근길에 몸을 맡기는 그 시간은 웃음이라는 것을 잊고 산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강남으로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암만 힘들어도, 암만 피곤해도, 해야한다
나는 나를 먹여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오늘도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