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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Feb 06. 2024

알코올 의존증의 탈출기

술 푸게 하는 사회

누나, 이 정도면 정말 병원 가야 할 것 같은데?!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한 뒤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빠른 성장, 수평적인 구조, 자기 계발을 위한 지원 등의 복지는 더 이상 복지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고 나서야 나는 연애도 일도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길잡이가 되어 올라타는 일, 그건 결코 보람된 일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맥주 한 캔을 집어든 것이 시작이 되어 언젠가부터는 맥주가 소주가 되었고, 소주가 위스키가 되었다. 술은 점점 독해졌고, 주량은 나날이 늘어갔고, 음주는 매일 지속되었다.

술 아니면 약이었던 시간


지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술자리는 좋아했지만 그저 회식 때 한 두어 번 정도 그리고 개인적으로 혼술은 맥주 한 캔 정도면 충분했다. 심지어 매일도 아니었고, 가끔 기분이 좋거나 가끔 기분이 울적한 날을 제외하고는 굳이 술을 찾지도 않았다. 특별한 날에 찾는 술도 최대치는 편의점 맥주 4캔이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다음날 힘들어하는 주량이었다.


그런데 술을 매일 마시는 지경에 이르다 보니 이제는 맥주가 아니라 소주, 그리고 위스키와 같은 독주를 찾게 되었다.


이상한 가성비 법칙을 내세우며 맥주 2캔보다는 소주 1병이 더 낫다는 합리화를 하면서 내 퇴근길에는 항상 소주 한 병 혹은 두 병이 들려있었다. 처음에는 남자친구도 술을 어느 정도 즐길 줄 알았던 사람이라 나의 혼술 문화를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혼자서 술을 마시는 빈도와 양 그리고 점점 빠지는 몸무게, 쇠약해지는 체력을 보면서 남자친구도 동생도 가족들도 나에게 '술'을 멀리하라고 했다.


어쩌다가 회사의 스트레스를 '술'로 풀게 되었을까?


 

위 체크리스트에서 4개 이상이면 '중독 상태'이다.


엄밀히 말해서 매일 술을 먹지 않는다고 손이 떨리거나 어려움이 있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아침에는 '그래 오늘은 술 마시지 말자'는 마음이 있다가도 저녁만 되면 '아쉬운데 반주 정도할까?'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늘 내일이 없는 것처럼 혼자서 마시다 울고, 혼자서 마시다 웃고, 혼자서 마시다 하루 내내 담아둔 나의 감정을 온전히 혼자서 쏟아내기 바빴다. 가끔 회사에서 자주 뒷골에 혈압이 단전부터 오르는 뻐근한 경험을 할 때마다 낮술 혹은 집에 둔 미니어처 위스키가 생각나곤 했다.

건강하지 못했다. 미성숙했다.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도 나는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사람이었다. 울고, 웃고, 감정을 터뜨리고 다음날 후회하는 20대의 만취가 30대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술'로 모든 감정들을 건강하게 풀지는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이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을 회고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피를 토하기도 했고, 코피는 자주 났고, 위경련으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데 쏟아지는 일들을 감당하지 못해 거의 자주 수액을 맞으면서 일을 하고 그 날 저녁에는 다시 술을 찾으며 내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서야 조금씩 괜찮아졌다.



신기하게도 무계획 퇴사를 했음에도 이상하리 만큼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회사를 어떻게든 다니면서도 악착같이 술을 멀리하고, 다시금 내 건강을 찾으려고 했던 노력이 무색하게 '퇴사' 한 다음날부터 나는 술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더 이상 술을 찾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일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술'을 찾는 마음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생각이 나면 반주정도, 혹은 남자친구와 함께 적당히 마셨다.

그렇게 1일, 3일, 일주일, 한 달 그렇게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서 나는 점점 벗어날 수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했고, 이직한 곳은 이 전의 직장보다 훨씬 더 먼 거리에 있어서 더욱 아침이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퇴근길에 술 생각은 전혀 나지 않는다. 빈 손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글을 쓰기 위해 앉거나 침대에서 책을 보는 저녁이 나는 아주 만족스럽다.


대부분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한 없이 즐겁거나 한 없이 슬프거나 감정의 기복 변화가 심하다. 그리고 취미가 없이 일과 삶이 분리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높은 확률로 술을 마실 줄 안다면 알코올 의존증에 노출되기가 쉽다. 언제건 사회는 살아가기에 팍팍하고, 술을 푸게 한다지만 결국 그런 사회를 탓하는 나 자신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손실을 입는 것일 뿐이다.


만약, 매일매일 술이 생각나고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이 술을 마신다고 결국 해결되는 건 결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잠이 들기 전까지 노곤해진 몸과 오늘의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환각의 시간일 뿐.

요즘은 건강식 도시락도 챙겨다닌다

그다음 날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주량을 늘리는 대신에 X 같은 하루에 맞서 싸우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자. 욕을 배워도 좋고, '예스' 보다는 '노우 (No)'를 외치는 연습도 좋다. 마인드 세팅처럼 회사에서는 전투적인 모드로 임하는 기술을 익혀도 좋다. 물론, 누군가에게 상해를 가하는 범죄적인 정도의 행위들은 이 연습과 배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두길 바란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면 지금 나의 결정으로 바꿀 수 있는 환경 상태를 신중히 고려해 보자. 이직, 퇴사, 휴식, 여행 그 모든 것이든 좋다. 의존이 아니라 즐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자.


알코올 의존증으로 살기에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알코올 의존증으로 살기에 우리의 청춘은 너무나 젊고 빛나는 순간이 그리고 더 많은 기회들이 우리를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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